9월 24일
움직일 수 있을 때 어디든 움직여야겠다. 더 추워지기 전에, 시간 있을 때, 몸이 아프지 않을 때, 어두워지기 전에.
오후 늦게 함양 상림공원에 갔다. 꽃무릇은 이미 꽃이 거의 다 졌고 상림숲 바깥에 다양한 꽃이 그득하다.
천천히 혼자 걸으며 다양한 꽃밭을 즐겼다. 혼자 방 안에서 이리 누웠다가 저리 누웠다가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고비는 있기 마련이고, 삶은 계속된다. 말없이 서서 오래 산 나무가 나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이 길을 지나면서 어깨에 가슴에 뭉친 것이 스르르 풀어진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느 시절에나 나를 힘들게 한 인연은 나에게 더 깊은 깨우침을 주기 위해 기다렸다가 나타났다. 방심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나를 내리쳤다. 덕분에 그 길을 일찍 지나왔고, 잊을만하면 다시 감사한 마음을 되새기게 했다.
저 길을 걷다가 문득 눈이 똘똘한 아이가 유모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나를 아주 뚫어지게 쳐다본다. 생긋 웃어준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리곤 떠오른 생각이
'그 사람은 다시 태어났을까......'
그 인연 덕분에 내가 10대 때부터 기를 쓰고 찾으려고 하던 것에 몰입하게 되었으니 그 인연 덕분이다. 지금까지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 덕분에 내가 이만큼 산 거다.
이젠 좋은 인연 만나서 저렇게 한 둥치로 어우러져서 살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숲은 걷고 나면 생각이 맑아진다. 숨 쉬기가 편해진다. 어깨도 등도 허리도 바짝 펴진다.
2020년 가을에 혼자 어두워지는 길을 한참 걸어서 밥 먹으러 다녔던 산청 내리 식당에 오랜만에 찾아갔다. 그때 진작에 차를 샀더라면...... 근처 지리산 둘레길도 꽤 걸었을 텐데.
그 해 혼자 살던 기숙사에 와이파이가 안 돼서 밥 먹고 한참 강변 따라 걸어서 찾아왔던 카페에도 찾아갔다. 그때 나를 유난히 따르던 아이들이 올해 고3이 되었다. 한철 기숙사에 같이 살아서 그런 것인지, 유난히 나를 따르던 아이들이라서 그런 것인지 종종 그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남아 계시던 남 선생님께서 명예 퇴직을 하셔서 수능 전에 겸사겸사 찾아갈 핑계가 없어졌다. 뭔가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이 남아서 종종 떠오른 것은 어쩌면 그들도 가끔 내 생각을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올겨울엔 그들 모두 원하는 바를 이루기를 바란다.
그해 가을에 혼자 걷던 길을 차 타고 지나가며 도르르 말아서 가슴속 더 깊은 곳에 묻었다. 그 사이에 아련한 추억이 된 시간.
'국내 여행 > 길 위에서<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년 10월 부산 여행 (0) | 2023.10.11 |
---|---|
고성 연꽃 공원 (0) | 2022.09.14 |
순천만 국가정원, 서문과 습지 (0) | 2022.09.12 |
2022, 추석 여행 (0) | 2022.09.10 |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0) | 2022.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