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건강관리용으로 딸에겐 도라지 배즙을 보냈고, 나는 언젠가 목이 많이 안 좋아서 잔뜩 사뒀던 '구증구포 흑도라지청'이란 것이 얌전하게 남아있어서 그걸 먹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도 돌아서면 나를 위해 뭔가 챙기는 것은 자주 잊는다.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강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내 목소리를 듣고 감기 기운이 있으면 병원보다는 생강차를 따뜻하게 끓여서 자주 마시는 게 좋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알고 있으면서도 한 번 생각나면 먹는 정도 이상으로 자신을 챙기지 않는 게으른 나에게 아주 적절한 조언이었다.
냉장고에서 해묵은 모과차를 찾았다. 2년 전에 함양 개평마을에서 마당 넓은 집주인께서 뒷마당에서 거둔 모과를 정성스럽게 썰어서 담근 모과차를 한 통 주셨다. 그걸 두어 번 먹고는 타지에서 한 해 보내는 동안 잊고 지냈다. 올해도 그 자리에 있는 붙박이 물건처럼 생각하고 모셔두기만 했던 거다.
끓인 물 부은 것으로는 충분히 우러날 것 같지 않아서 냄비에 물을 부어서 모과차를 팔팔 끓였다. 청귤청 있는 것도 조금 넣고 다 끓인 뒤에 옛날 옛적처럼 생각되는 2016년이었던가 그전이었던가..... 그즈음에 친구가 갖다 준 꿀 한 통을 여태 다 먹지 못하고 모셔뒀던 것을 꺼내서 한 숟갈 탔다. 타인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모아서 뜨거운 차로 마셨다. 오래 묵어도 버리지 못한다. 감히 헤프게 쓰지도 못하고 잊고 있다가 뒤늦게 그 정성에 흔적이 사라질 즈음에야 다시 머금어본다.
모과향에 살짝 가미한 청귤청의 상큼한 조합에 그 꿀 한 스푼은 금상첨화였다. 들고 다니며 수시로 마실 수 있게 보온통에 한 통 담았다.
이제 어디든 나갈 수 있다. 병원에 가는 것으로 수고한 몸을 달래야 한다는 생각은 이 차 한 통을 우려낸 것으로 잊었다. 자주 탈 나는 목을 따뜻하게 감싸줄 스카프나 몇 개 사야겠다.
비어있는 곁에 가을바람이라도 채우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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