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전생을 기억한다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를 봤다. 태어날 때마다 전생을 일일이 기억한다면 머리가 얼마나 복잡하고 피곤할까. 이번 생의 일과 인연도 다 기억하지 못하고 필요에 따라 혹은 필요해도 기억이 아득하게 가라앉는데...... 돌고 도는 생의 많은 일과 인연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 시스템은 얼마나 다행인가.
언젠가 이전 생이 있다면 그 기억 속에 현생에서 풀지 못하는 인연의 꼬인 부분을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연령 퇴행 최면을 해본 때가 있었다. 찾기를 원하는 기억에만 접속하는 비법도 알지 못하고 혹여 스치듯 보고 느낀 것이 있다고 하여도 그게 꿈이 아니라고 증명할 방법도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경험한 것이 일종의 환각 혹은 환상으로 추론할 장면이었어도 그것을 본 다음에 내 인생의 어떤 부분의 통증이 극적으로 완화하거나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게 중요하다. 그 경험을 하기 전에 오랜동안 목 부위에 조금이라도 뭔가 닿으면 그대로 죽을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 느껴져서 섬뜩할 정도로 무서웠다. 20대 중후반과 30대 초반에 이어진 특이한 경험을 일부 옮겨본다.
꿈 일기 정도로 생각해도 괜찮다. 그때 본 장면은 엉뚱하게도 이 일대 바다에서 목선을 타고 배와 배가 몸체를 맞대로 전투가 벌어졌고, 나는 어느 순간에 목에 칼을 맞고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물에 빠졌다. 목에 칼을 맞고 살이 밴 통증과 물에 빠져서 숨을 쉴 수 없었던 통증이 겹쳐서 눈물을 흘리다가 깼다.
언젠가 어느 시절의 전생에 이 근방의 바다에서 전투를 했다면 수군이었을 테고, 배 위에서 칼을 들고 싸우다가 죽었다면 수없이 많은 사람을 칼로 헤쳤겠다. 꿈인듯 본 그 장면에서 내가 입었던 옷의 무게감까지 기억이 선명했던 때가 있었다. 그 전투는 나와 종족을 지키기 위한 방어였지만, 일말의 죄책감이 어딘가에는 새겨져서 다른 시절의 기억으로 읽어서 더 아플 수도 있었겠다. 목은 그래서 끔찍하게 아픈 거였겠다. 바닷가에 살면서 물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무서웠던 것도 어쩌면 트라우마가 어딘가에 새겨져 있었던 까닭일 수도 있겠다.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 속 주인공을 이해하듯 그 장면을 해석했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게 했던 끔찍한 통증의 일부가 이후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현재의 나로 존재하기 위해 나를 끌어안고 이해하고 풀어놓는 것. 그 과정 중에 한 가지를 그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 생활을 할 수 없는 시기가 길어졌던 까닭이고, 덕분에 기억의 닻을 끌어올려 물 위에서는 볼 수 없는 깊은 곳에 잠긴 시간의 일부를 풀어낼 수 있었다.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떠오른 기억.
기록하지 않는, 기록하지 못하는 기억 때문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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