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초에 마트에서 씻은 수삼에 40% 할인이라고 붙은 가격표를 보고 나도 모르게 한 통 사 온 게 있었다. 지난주엔 꽤 큰 수삼을 채 썰어서 그대로 먹기엔 과해서 찹쌀가루 반죽을 입혔다. 프라이팬에 부쳐서 감자채 전처럼 먹거나 확 익혀서 감자튀김처럼 먹거나 되는 대로 먹으려고 팬에 넣어서 기름에 익혔다. 의외로 수삼채전은 감자튀김 못지않게 맛있었다.
오늘 냉장고 문을 무심히 열었다가 그때 산 수삼이 거의 80%나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으로 부쳐먹으니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 기억 때문에 수삼을 감자채 썰듯이 썰었다. 썰다 보니 뭔가 기름에 튀기거나 부치는 게 귀찮다.
그릭요거트를 넣고 갈아서 먹으면 어떨까? 어쩐지 조합이 뻑뻑할 것 같아서 까먹기 귀찮아서 까다가 놔둔 메로골드 자몽을 까서 몇 개 넣었다.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릴 정도로 맛없는 조합이다. 시고 쓰고 맹맹할 맛이다. 상상보다 더 기괴한 맛이다. 수삼 분량을 줄였다면 괜찮았을 것 같은데 썰어놓은 수삼 양이 많았는데 그걸 다 넣었더니 쓴맛이 강하다.
다른 사람에게 이걸 먹으라고 줬다면 따귀를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미 사놓았고, 썰었고, 갈아서 만들었으니...... 저지른 대가를 치러야지.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하이볼 잔에 수삼 셰이크를 그득 담아서 벌주 마시듯 꾸역꾸역 다 마셨다. 식욕 억제제 정도로 쓸 요량이었는데 성공인가?
심심하고 외롭고 쓸쓸하다는 감정적인 표현을 남발하던 내 입이 명랑만화에나 등장하는 꺼벙이 같은 표정을 짓는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며 심심함을 달랜다. 그럭저럭 쓸만 했다. 덕분에 몸에 좋을 것 같지만 이상한 재료를 더해서 갈아서 한 잔 그득 마셨고, 기분이 달라져서 일기를 쓴다.
다시는 이런 짓은 하지 말자. 남은 수삼은 찹쌀가루 반죽 입혀서 부쳐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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