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1
이제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지 않고도 출근했다가 집에 돌아올 수 있게 됐다. 가끔 나가는 산책길 끝에 주변 건물 상호도 쳐다보고 우연히 발견한 동네 맛집에서 수제비 한 그릇 맛있게 먹고 돌아온 날도 있었고, 며칠 묵혔다가 딸 데리고 가서 그 집에서 한 끼 맛있게 먹고 돌아왔다.
자연스럽지 않게 정돈된 길에 이제 익숙해져서 다른 동네에 들렀다가 오면 오히려 이곳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신호등 없는 건널목에 서서 지나가는 차 눈치 보며 서 있으면 이 동네에선 차가 멈춰서 보행자가 다 건너갈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곳에서 자기 방어를 위해 어떤 경우라도 차부터 보내주고 길을 건너야 하는 게 당연한 것 같았던 분위기를 혼자 힘으로는 바꿀 수 없었다.
여긴 다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에 적당한 곳으로 잘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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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초절임 한 통 만들고, 양배추, 양파, 무를 한 통에 담고 피클링 스파이스까지 넣은 단촛물을 끓여 부어서 채소 절임도 한 통 만들었다. 일전에 무 한 개 사다가 무나물, 무채까지 만들어도 남은 것을 썰어서 김밥 쌀 때 쓰겠다고 단무지를 만들었더니 새콤 달콤한 게 먹기 좋다고 딸이 더 만들어달라고 했다.
집에서 세끼를 다 먹는 딸에게 요즘은 뭘 챙겨줄 여력도 없었다. 사놓은 달걀을 거의 먹지 않아서 한꺼번에 소진할 요량으로 달걀찜을 잔뜩 만들었다. 그 정도 집안일 한 것으로도 금세 피곤해져서 그대로 눈이 감긴다. 블로그를 닫으니 세상을 향해 열어놓은 유일한 문을 닫은 것 같은 갑갑한 마음에 뭔가 정리라도 하려고 들어왔는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니 눈이 그대로 붙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