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7
근교 관공서에 볼 일이 생긴 딸이 내가 퇴근하기 전에 직장 근처에 와서 기다렸다가 만나기로 약속했다. 전날 새벽까지 일하고 잠을 거의 못 자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지만, 다음으로 미루기 어렵고 그곳까지 이동하는 대중교통편을 찾기가 어려워서 내가 동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류를 제출하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그 동네 맛집을 찾아서 밥 먹고 가자는 딸.
조치원 읍 어느 귀퉁이 주차장에 찾아가서 주차하고 찾아간 음식점은 건물 지하에 있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 허름한 입구를 지나면서 흡사 80년대로 시간 여행이라도 하게 된 것 같았다.
9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경양식집.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생겼었을 것 같은 오래된 음식점이었다.
딸이 주문한 두 가지 메뉴가 나왔다. 우선 양이 엄청나다.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딸이 한 눈 판 사이에 내가 한 입 맛보고 난 뒤에야 딸이 사진을 찍는다.
80년대에도 올드팝이라고 하며 들었던 것 같은 정말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온다. 가격도 양도 맛도 괜찮았던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딸과 이런저런 대화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하게 될 거다.
캔자스의 Dust in the wind가 흘러나왔다.
무리하게 일하고 잠을 좀 못잔 것만으로도 내 몸은 그대로 무너져서 땅에 묻힐 것 같았는데, 조치원 교육원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어서 함께 나설 수밖에 없었고, 간 김에 빈 속으로 집까지 가는 것보단 밥 먹고 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주변 음식점 검색하다가 찾아간 거였다.
허름한 건물 지하에서 30년 전에나 존재했을 것 같은 옛날 인테리어 그대로 보존(?)된 가게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돌아가는 길엔 네비가 알려준 길을 건너뛰는 바람에 모가 조금 자란 논 사잇길을 지나서 오랜만에 시골 풍경을 함께 봤다. 지난 주말에 함양, 거창에 다녀오면서 나는 뭔가 다른 풍경을 보고 왔지만, 딸과 함께 전원의 풍경을 보는 기분은 한결 부드럽고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