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릉 수목원은 마침 일요일이라 출입이 가능했다. 광릉 수목원만 못해도 서울 시내에서 나무가 있는 길을 산책할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사들고 나온 카푸치노를 한 모금씩 음미하며 아껴 마셨다.
점심을 얻어먹고 그냥 돌아서기 미안해서 산 커피였는데 그 맛이 며칠째 감미롭게 입안에서 기억되고 있다. 어렵게 시간을 내준 그 친구가 고맙고 늘 퉁명스럽고 쏘아대는 내 태도가 부쩍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더 현실적인 이야기만 툭툭 던져놓고 돌아서며 입안에 머금고 있던 커피의 맛만 각인된 모양이다.
아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즐기며 낙엽을 밟고 색이 곱게 든 단풍잎이며 은행잎을 주워 모으는 고사리 같은 손...... 나는 그 모습을 싱긋 웃음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 한산한 산책을 끝내고서 사람이 붐비는 인사동으로 향했다.
아이는 버스 안에서 잠들고 목적지를 지나쳤어도 내리지 못해 난감해하다 잠든 아이를 안고 종로에서 내렸다. 어림으로 어지간한 곳은 찾아다닐 정도로 지리를 안다고 하지만 워낙 오랜만에 종로에 나간 것이라 잠든 아이를 안고 인사동 골목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패스트푸드 점에 잠든 아이를 앉혀 놓고 커피를 마시며 생각 하나를 정리했다. 외로움 때문에 내 마음 한 구석에 애매한 감정으로 자리하고 있던 친구도 애인도 아닌 그들을 그냥 내려놓기로 했다. 집을 떠나온 자리에선 평소에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할 수도 있기에 여행이란 것이 꼭 구경거리가 있어야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닌 것이다.
갑갑하게 틀어박혀 있던 방안을 벗어났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일단 만족스러웠고 정리되지 않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고, 평소와 달리 번화가를 걸어보는 기분도 과히 나쁘지 않았다. 번잡함은 잠시일 뿐이니 오히려 변화로워서 인파조차도 흥미로왔다.
천천히 걸어서 가도 좋을 거리를 지하철을 탔다. 아이가 열차를 너무 좋아하는 탓에 일부러라도 목적지 없이도 지하철을 숱하게 타야 할 판국이었기에 걸어가긴 추운 날씨에 잠들었다 깬 아이에겐 무리인 듯 싶어 놀이 삼아 지하철 타는 놀이를 했다.
패스를 넣는 것도 아이에겐 신기한 일이었다. 더 어릴적부터 교통수단은 이것저것 안 타본 것이 없이 다 타봤지만 그중에 제일 즐기는 것이 비행기, 그다음이 열차인지라 그나마 지하철을 기차 대용으로 태워주는걸 어찌나 신나 하던지 나도 마냥 즐거웠다.
사람들 많은 거리로 막상 들어서니 기운이 조금씩 빠지는 것 같았다. 나도 아이 손을 잡고 둘이 왔지만 다정한 연인들이며, 나처럼 아이랑 둘이 아닌 셋인 가족들을 보며 나는 왠지 가슴 한쪽이 시큰시큰 아프고 저린 기분이 들었다.
옆구리가 퀭하고 허전해서 아이를 더 바싹 끌어당겨 잡고 이 집 저 집 바깥까지 내어놓은 알록달록한 상품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디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기타를 매고 돌 위에 올라가 신명나게 떠드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에 나도 잠시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웃는 그 속에 어우러져 보고 싶었다. 기타를 맨 남자는 노래며 입담이 사람들을 끌기에 충분할 만큼 많은 연습을 한 흔적이 보였다.
그는 KBS 모 프로그램의 스텝이라는데 바쁜 중에 시간을 내어 소년소녀 가장 돕기 모금을 수년째 해오고 있다 했다. 그의 열창과 열변에 박수를 치고 스스럼없이 지갑을 열었다.
나는 몹시 가난한게 사실이다. 가진 것이라곤 빈 통장과 내가 쓰지도 않았는데 사기 당해서 생긴 이상한 빚과 허술한 몸, 그리고 책임져야 할 식구 저 어린 딸아이 하나. 가끔씩 아이를 굶겨야 할 위기를 느낄 정도로 금전적으론 가난하다.
그래서 불우이웃돕기나 남을 도와야 할 일이 생기면 마음 같지 않아서 늘 작은 도움도 선뜻 내밀 수 없는 내 처지가 화가 나기도 한다. 사지 멀쩡한 것이 제 몸이며 아이 하나 간수 못한다는 손가락질받을까 두려울 정도로 경제관념이 없는 게 사실이다.
없는 걸 퍼서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늘 나중으로 미루어왔다. 주고 나면 내가 굶어야 하므로 줄 수 없다 생각하고 우선 내 식구부터 먹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나마 얇은 지갑을 열기에 인색했었다.
그래도 몇 년을 백수로 지내다 처음 내 힘으로 일해서 번 돈이 아직 몇 푼 지갑에 남아 있으니 많지 않지만 지금은 있으니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폐 한 장을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모금함에 넣고 오라고 밀어보내니 멈칫멈칫 사람들 많은 게 두려운지 한참을 망설이다 다른 아이들이 돈을 들고 나오는 걸 보고 쪼르르 가서 넣고 돌아와서 싱긋 웃는다.
금세 돌아서 오면서 별 것도 아닌데 내가 뭔가 했다는 스스로의 위안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게 된다. 더 깊이 복잡하게 생각할 것은 못되지 싶다. 내 인색함을 이기기 위한 방책으로 지갑을 연 것뿐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어림도 없지만 나도 언젠가 내 생활의 틀이 제대로 잡히면 남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을 돕고 살 생각이었고 그중에서도 부모의 보살핌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아이들에 대한 도움을 가장 주고 싶었었기에 적은 돈을 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언제쯤 맘껏 해줄 수 있을까..... 그래도 내 마음을 조금 보태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내가 과히 자비심이나 희생정신이 강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도 내가 없으면 그들과 같이 고아나 소녀가장이 될 터인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니 내 아이나 남의 아이나 그 안타까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할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살고자 하면 그다지 많은 에너지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을 위해 무얼 얼마나 해야 즐거울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냥 덧없음으로 일축된다.
나를 잘 가누고 다스리고 진정한 주인이 되어 건강한 몸, 건강한 정신으로 쏟아낼 수 있는 에너지를 될 수 있는 만큼 많이 사용하여 그 에너지로 살아 있음이 진정 가치로울 수 있는 뭔가를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오랫동안 방황했고 아직도 그 방황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가끔 쉬어가는 걸음에 돌아보면 존재함의 진정한 의미는 나와 남을 견줌 없이 동일시할 수 있는 의식상태에서 느낄 수 있고, 끊임없이 반복되어 재생되는 현재라는 프로그램에 충실하고 또 충실한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것만이 현상계에 존재하는 내가 존재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최소한의 바탕을 제공할 것이다. 종교에 의지하여 자신을 낮추고 닦고 참회하고 경전을 공부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현실에 더 충실해지기 위해 삶의 기반을 단단히 다지는 기초작업이며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바르게 알고 그다음 실천하는 것이 앎의 완성이다. 머리로만 알고 있는 숱한 것들을 실천하지 못하는 나의 미숙함도 계절이 깊어감에 따라 차츰 나아질 것인지 자신의 잠재된 무한한 가능성에 아직은 희망을 걸어 볼 수 있어 행복하다.
물질적으로 베풀지 못하더라도 상처 난 마음, 위안이 필요한 마음,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갈 실마리가 필요한 이들에게 촉매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정신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며 고난의 빛깔로 파고드는 현실도 지혜와 겸양을 닦기 위한 수련으로 여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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