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2
예전에 그런 말이 있었다. 한국 사람은 정해놓은 약속 시간보다 늦게 나오는 게 일반화되었다는 의미로 쓰였던 말이다. 요즘은 일부 개인이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움직이고 조금 일찍 도착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얼마나 피곤할 것이며, 그 어긋남 하나로 시작한 삶의 균열이 미세하더라도 반복되면 지치고 힘들 것이다.
화장실에 가면서 음식점에서 맡은 자리에 내 물건을 두고 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인 나라. 우리 사회는 완벽하지 않지만, 좋은 점이 많다. 무얼 봤는지 딸이 저녁 먹으면서 그런 이야길 꺼냈다.
공중화장실이 깨끗하게 잘 운영되는 우리나라 같은 곳도 드물 거라며 우리나라가 살기에 좋은 점이 많다며 한 가지씩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 전엔 이곳이 싫어지면 다른 나라에 가서 살자는 말을 했다. 내가 직장 생활하며 겪는 부조리한 일, 사람들의 부당하고 부도덕한 태도 등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칠 정도로 피곤하고 끔찍한 일이 자행되는 이 나라가 과연 안전하게 아이를 낳아서 키워도 될 곳인지 고민하는 말을 딸이 종종 했다.
아마도 올해 유난히 많은 친구가 세계 각국에 나가서 생활하며 전해주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듣고, 상대적으로 괜찮은 우리나라 실정과 비교해서 그런 말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 우리나라에 살기 좋은 이유가 많지. 그러니까 이곳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갈 생각보다는 잘못된 부분을 찾아서 고쳐서 더 나은 곳으로 만들 노력부터 먼저 해보자."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을 해치는 일을 자행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지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고, 책임지고,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 권력 쟁탈전에 혈안 된 이들이 민중의 삶을 밟고 그들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하는 짓거리를 보고 있자니 숨이 확 막힐 것 같다. 그보단 내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하는 사람 중 하나로 그저 한숨만 쉰다. 이렇게 우리를 개돼지로 만드는 이 세상을 포기하지 말고, 한 가지라도 바꿔야지.
우리 삶이 조금 덜 힘들어지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조종관을 잡는 자리에 앉는 이들은 좀 가려서 앉혀야지. 어쩌면 하나같이 관상이 과학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면상이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우리 사회의 썩은 부분이 절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단연코 말끔하게 도려내야지. 새살이 돋기 전까지 고통스럽겠지만, 이미 썩은 걸 그냥 덮고 살 수는 없잖아.
공적인 약속을 하고, 공금으로 먹고사는 너희는 약속을 지켜라. 해낼 수 없으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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