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1
인생사 새옹지마,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싶을 만큼 일이 이상하게 꼬일 땐, 뭔가 확실히 머리 아프고 이상한 일이 생겨야 그게 굴러서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전조 현상이라고 믿고 싶다.
딱히 힘든 일이 겉으론 없는 것 같아 보여도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다. 매일 뉴스를 듣다 보면 답답한 일 투성이다. 그래도 더 나빠지지 않아야 하니까 잘못된 것이 그대로 더 깊이 썩어가게 둬서는 안 된다. 처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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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깨서 뉴스를 듣다가 스르르 잠시 잠이 들었는데 딸이 부른다. 관리사무소에 딸 번호를 등록해 놔서 딸에게 전화가 간 모양이다. 지하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를 누가 들이받아서 사고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딸과 함께 주차장에 가보니 앞 범퍼가 깨졌다.
사진을 찍어놓고 집에 와서 전화를 걸어보려니 전화가 안 된다. 알뜰폰으로 바꾸면서 esim으로 등록했는데 가끔 무엇이 문제인지 전화가 오지도 않고 걸리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전화번호 입력한 것이 대부분 삭제 됐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딸 휴대전화로 관리사무소에서 알려준 번호로 전화해서 다시 주차장에 내려갔다.
내 차 옆에 주차한 초보운전 딱지를 붙인 차를 운전하신 할머니는 내 차가 주차된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빈 공간인 줄 알고 후진하며 냅다 내 차를 받아버린 거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러지 않고선 살짝 접촉해서 범퍼가 깨지진 않으니까..... 할아버지께서 조금 미안해하시며 말씀하시고, 할머니는 댁에 가셨는지 그 자리에 계시진 않았다.
번거롭긴 하지만 차량 렌트하고 범퍼는 수리하면 된다. 대물사고니까 보험처리하면 되니까 별 문제는 아니다. 내가 사고를 낸 것도 아닌데 아무 일도 없었으면 하는 하루는 그 사고로 인해 여기저기 전화하고 통화하느라 정신없었다.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 타러 들어가는 길에 문 앞에서 심장을 부여잡고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노부인과 마주쳤다. 아마도 운전자인 모양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지나왔다. 운전 초보에 비오는 날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주차장에서 엄한 차를 들이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빈 공간인 줄 알고 차를 들이밀어서 차 범퍼가 깨졌으니 퍽하는 소리도 났을 테고, 얼마나 놀랐을까.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서 밥 먹으면서 딸에게 말했다.
"그래도 남편이 있어서 좋겠다. 대신 전화해서 일처리도 해주고..... 나도 남편이 있어서 이럴 때 말이라도 한마디 도와주면 좋으련만....."
별일도 아닌데 온통 마음이 흔들흔들 울렁울렁 멀미가 난다. 언젠가 내가 접촉사고를 냈을 때 전화할 데가 없어서 제주도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어쩌면 좋을지 물었다. 친구가 보험사 전화번호를 찾아서 알려줘서 해결했다. 늘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자잘한 일에 부딪힐 때마다 종종 흔들린다.
내가 다친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고, 차가 살짝 부서진 게 뭐라고..... 그런 것 때문에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아닐거다. 늘 딸에게 든든한 부모 역할을 잘 해내려고 억지반으로 기운 차리고 열심히 살아낼 생각만 했다. 이 지점에선 좀 지쳐서 그냥 쉬고 싶은 거다. 마음이 지쳐서 기대고 싶은 약한 생각 때문에 잠시 울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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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편 보험사에서 보내준 링크를 몇 개 열고, 통화한 끝에 렌트카를 받았다. 월요일에 부품이 입고된다고 하여 차를 그날 받게 될 줄 알았는데 오늘 바로 렌터카를 받아서 익숙한 내 차를 탈 수 없어서 조금 불편할 것 같다. 딸이 차 안에 있던 물건을 주섬주섬 담아서 옮겨줬다.
작은 일이어도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고맙고, 필요한 부분이다. 딸이 늘 이렇게 내 인생 한복판에 있을 수는 없으니 서로 기대고 도와주며 남은 인생을 함께 걸어갈 사람을 꼭 찾아서 만나야겠다. 어떤 일을 겪어도 결론은 나의 결핍을 채우는 쪽으로 기우는 모양이다. 허퉁하고 지친 마음이 흔들리고 틈을 보일 때, 그대가 편안한 모습으로 내 곁으로 와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