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7
오후에 도서관으로 달리는 길에 재생한 플레이리스트에 나오는 달달한 노래가 단숨에 긴장을 풀어놓았다. 나도 모르게 금세 그 순간으로 시공간 이동이라도 한 듯, 천천히 달리던 차 안에서 아주 담담하게 바깥 풍경만 보고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참 좋았구나. 그때. 아무런 감정의 파고 없이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 그때 함께 들었던 노래를 듣다가 뒤늦게 그 순간에 읽지 못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신호를 받고 서 있는 차 안에서 왈칵왈칵 감정이 올라온다. 노래 몇 곡이 감정을 훅 몰아치게 한 뒤에 야니의 Until the last moment가 흘러나오면서 지나쳐온 많은 감정이 정화된다.
이야기 하다보니 알겠다. 갈 수 없는 길 앞에서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세계를 흘낏 보고 돌아서면서 담담할 수밖에 없는 나의 감정이 비록 얕고 얇기는 해도 순수한 감정이었다는 것을.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찍은 공연 영상을 보며 20대에도 어느 날 내 방에 앉아서 이와 비슷한 감상에 젖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런 접촉도 없이, 그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이런 상상의 감정을 그림처럼 그릴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끊었다. 전에 살던 동네엔 철길이 없어서 계획하기 어려웠던 기차 여행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생각이다. 바다 보러 통영까지 운전하고 다녀오면 돌아오는 길에 지쳐서 집까지 무사히 돌아오는 게 큰 일이 되고 만다. 내일은 짧은 시간에 멀리 갔다가 돌아와야 하니까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
피곤해서 말도 글도 꼬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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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늦게 잠들어서 아침에 눈감고 한참 누워 있다가 깼더니 눈소식이 들린다. 따뜻한 남쪽에 살아서 눈구경하기 힘들어서 눈 온다고 하면 그저 신기하고 좋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사는 동네엔 어쩌다 한 번 눈 내리는 것 외엔 그다지 달갑지 않을 것 같다.
눈 내린 풍경을 보는 것은 좋은데 오늘 아침에 서울에선 출근 전쟁이 있었다는 뉴스를 보고 나니 따뜻한 방안에서 이렇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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