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8
자신을 너무 믿어서도 안 되고, 너무 못 믿어도 곤란하다. 때로는 과하게 믿고 게으름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을 믿지 못하여 머뭇거리기 일쑤다. 오늘은 미루고 미룬 일을 하려고 책상 주변을 치우다 보니 결국 노트북 하나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어서 거실에 옮겨둔 모니터와 연결하여 듀얼 모드로 작업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거실 서랍장 위에 모셔두고 한동안 쓰지 않던 모니터를 정리하고 방에 틀어박혀서 쓰던 노트북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틀을 잡고 서식대로 상을 차리는 것까지는 능숙하게 했는데 막상 내용을 채우기 시작하려니 막막하다. 이 일을 하려면 당연히 만드는 내용 정리를 시작했다. 노트북에 대충 썼다가 펜으로 손글씨도 써본다. 워낙 오래 놀다가 손에 잡으니 집중이 잘 안 되고 짜증이 난다.
근본 없이 막 써서 될 내용은 아니니까 논리적 체계를 갖추고 정석대로 해야 할 모양이다. 이런 걸 겁도 없이 내내 미루고 있었다니.....
내가 거실에서 일하는 시늉을 하고 있으니 딸이 도통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다음 주부터는 한 달 동안 딸이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내가 쉬고 있으니 일해서 생활비 좀 내놓으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서 우물쭈물 말했더니, 자기 용돈 일부만 남기고 생활비로 쓰게 주겠다고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이제 시험 준비도 하지 않으면서 매일 방 안에 틀어박혀서 아이패드와 폰으로 놀기만 하는 걸 어떻게 보고 견디나 조금 신경 쓰였는데 아주 잘 됐다. 매일 아침 출근 시켜주려면 나도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우리의 생활리듬이 아침형으로 바뀌겠다. 생활의 변화가 필요한 때였는데 잘 됐다.
*
오늘 아침에 올해 최고의 체중을 갱신했다. 이대로 굴러다니지 않으려면 의지를 갖고 식단 조절해야 한다. 운동한다고 살이 빠질 것 같진 않다. 근력 운동 조금 하는 건 다이어트와 관련 없으니까 그것 때문에 더 먹을 이유도 없다.
요약 정리해야 할 글을 읽는데 내용이 눈밖으로 슬슬 흘러버린다. 마침 뭔가 먹어야겠다고 드디어 거실에 나온 딸이 떡볶이, 순대, 튀김 세트를 먹자고 해서 오랜만에 떡튀순 세트를 주문했다. 이맛도 아니고 저 맛도 아니다. 집중해서 처리할 일이 생기니까 그런 게 맛있는 지도 모르겠고, 그저 딸이 먹자고 하니까 먹은 것일 뿐.
*
아무나 만나지 않으려다가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나이 들까 봐 그래도 내게 관심 있어하는 사람은 한 번은 만나보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한두 번 지나고 보니 귀찮고 싫다.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알 수 없는데 도대체 뭘 기준으로 계속 만날 사람을 선택하거나 선택당하는 입장이 될지 내 머리로는 계산이 잘 안 된다.
내가 20대였을 때 다양하게 사람을 만나고 겪어봤어야 했다. 그 시절을 그냥 지나고 이제야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하니 모든 게 어렵다. 세월을 돌릴 수는 없으니 이대로 계속 구시렁거리는 글이나 쓰면서 혼자 늙어가거나,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에 담대해져서 가볍고 편하게 낯선 사람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거나...... 기적처럼 인연이 될 남자가 내 앞에 확 나타나거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 어림없는 일이다.
지금과 같은 관계로 딸과 둘이 사는 게 서로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어릴 땐 그렇지 않았는데 다 큰 딸은 애가 아니어서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믿고 기대기엔 어쩐지 엉성하다. 결론은 이 모든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게 다시 힘내서 한 10년은 조용히 숨만 쉬어져도 감사하며 사는 거? 과연 지금 이 지점에 와서 가능한 선택일까.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돈을 더 벌어서 조금 덜 불편하게 사는 것 외에 어떤 특별한 만족감이 있을까 싶다. 엄청나게 노력해서 얻고 싶은 것이 지금은 없다. 그래도 어떤 면으로든 나를 더 발전하게 끌고 나가는 것 외엔 이 상황에서 더 좋아질 뾰족한 수는 없다. 그냥 견디는 것 밖에 없는 게 과연 삶인가 싶다. 내 기질은 묻고 또 묻고 확인한 뒤에 내 머릿속 세계와 연결된 우주로 확장하고 평정하는 것으로 향하게 설계되어 있는 모양이다. 문득 생각 끝에 지침이 그 방향으로 향한다.
'흐르는 섬 <2020~2024> > <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남 순대 (0) | 2024.11.29 |
---|---|
11. 29 (0) | 2024.11.29 |
첫눈 작품 (0) | 2024.11.28 |
내가 글을 쓰는 이유 (0) | 2024.11.27 |
기차 여행 (0) | 2024.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