탸슈에서 눈을 떴다. 전날 그림젤 패스를 넘으며 체르마트로 들어가기 위해 탸슈를 찾아드는 긴 여정이 몹시 피곤했던지 일찍 잠들었다. 그런데도 아침엔 너무 느긋하게 잠을 늦게까지 자버렸다.
창밖을 보니 정말 빙하 덮인 산이 보인다. 한여름인데 세상에나~! 진짜 스위스 산자락에 왔다는 사실이 눈으로 봐도 믿기 힘든 아침이었다. 멀리 보이는 산을 보고도 이렇게 설레다니 정말 오늘 하루가 기대된다.
편안하게 하룻밤 잘 묵고 아침을 먹으러 갔더니 젊은 사람들은 다들 일찍 나갔는지 노인분들만 앉아서 식사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를 숙소 지하주차장에 맡기고 탸슈역에서 체르마트행 기차를 탔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를 들러서 스위스에 왔기에 여정이 길어져서 지칠 때도 되었다. 제일 마지막 코스로 넣지 않았으면 다른 곳에 가서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체르마트로 향하는 기차는 상당히 자주 있고, 사람도 많았다. 좌석이 몇 개 없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서서 갔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다. 창밖의 풍경들을 보며 잠시 서 있는 것이 힘들지 않게 느껴질 정도의 거리감.
체르마트 역을 빠져나와 조금 걸으니 고르너그라트행 산악열차를 타는 곳이 근처에 있었다.
매표소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뭔가 씌어 있다. '알프스 산정의 노을'이라고 한글로 작게 적혀 있다. 우리는 오늘 당일치기로 체르마트를 다녀오기로 했으니 산정의 노을은 아마도 볼 수가 없겠지.
열차표에 좌석번호 그런 거 없다. 표 사서 자리 먼저 잡으면 임자다. 자리 없으면 서서 가야 함.
산악열차가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는 동안 멀리 창 너머로 마터호른봉이 보이기 시작하니 눈이 단박에 커졌다. 우리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나는 멋진 도시보다는 산과 물이 좋은 곳이 좋다.
해발 3,089m에 위치한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가면 4,000m에 달하는 알프스의 거대한 29개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보인다. 1898년에 스위스 최초로 전기 톱니 궤도 열차를 운행하기 시작한 곳이다. 알프스에서 3번째로 긴 고르너그라트 빙하가 있다고 한다.
고르너그라트 역에서 내리니 3100 쿨름 호텔이 보인다. 이 신선하고 멋진 풍경에 아이처럼 신나서 폴짝거리며 카메라 들고 설치다 곧장 고산지대에서 느끼는 갖가지 통증에 놀라 화장실로 달려갔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멀미나듯 속이 울렁거렸다. 그대로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아프다하면 일행들 기분을 망칠 것 같아 화장실 들어가서 얼른 덧입으려고 가져온 옷 겹겹이 껴입고 열심히 호흡을 한참 고른 뒤에 밖으로 다시 나왔다.
일생에 한 번쯤은 꼭 가봐야 할 곳이라던데 정말 한 번 뿐이라면 바로 오늘이겠지. 다음에 꼭 다시 오자 약속하고 돌아왔지만, 우리에게 다음은 언제일지 기약할 수 없는 일이니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이 멋진 풍광을 즐겨보자. 그러니깐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서 내 미약한 기억을 보충하도록 하자고!
호텔 아래쪽엔 작은 교회도 있다. 고산증 때문에 적응될 때까지 거의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아쉬울까 봐 일단 보이는 대로 셔터는 눌러본다. 어떻든 내가 본 것을 사진으로 남겨놓으니 그때 보았을 때 느낌들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인명 구조견으로 유명한 멋진 개가 관광객과 사진 찍어주고 주인이 돈받는 알바를 하고 있다.
저 개는 어지럽지 않을까? 나는 몹시 어지러운데. 한창 적응이 잘 안 되고 힘든 뒤에 봐서 그런지 저 개가 어쩐지 안 돼 보인다.
마터호른은 4,478m. 일단 눈에 보이니 익숙한 봉우리가 반가워서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엄청난 관광객을 피해 그나마 사람들 덜 나오게 찍은 기념사진. 파리 라발레 아울렛에서 산 스웨터를 껴입고 속에 폴라티까지 입었는데 추워서 나중에 외투를 두 겹이나 입었다 벗기를 반복했다.
익숙해지니 덜 춥던데 처음엔 내리자마자 너무 추웠다. 딸에게 옷 많이 입어도 안 뚱뚱해 보이게 찍어달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진을 다시 보니 그때의 기억들이며 자잘한 대화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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