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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5>

7월 8일

by 자 작 나 무 2015. 7. 8.


*

문득 편지를 쓰고 싶었다. 누군가 마음이 가는 대상이 있어 약간은 그리운 마음을 담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대상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이성이든 동성 친구든 오래 마음에 담고 교류를 했던 대상과는 편지를 오래 주고받은 이력이 있다. 


요즘은 쉽게 카톡이나 메신저 등을 이용해서 간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으니 기다려야 하고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편지를 주고받으려는 이는 드물 것이다. 감정을 가다듬고 생각을 찬찬히 끌어올려 마음을 형상화하는 글을 옮기는 과정이 감정을 더 깊어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험들 때문인지 나는 가볍게 잘 모르는 상대와 카톡 등의 대화보다는 편지를 선호한다.


친구라 할만큼 친해지면 물론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조금씩 알아가고자 할 때 멀뚱하니 마주하고 인스턴트적인 대화창을 이용한다는 것이 나는 어쩐지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친구를 잘 사귀지도 못하고 거의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아무나 쉽게 사귈 수 있는 나이도 아니거니와, 좋은 사람은 있겠지만 나와 맞는 상대를 만나기는 이런 상황에서는 하늘의 별따기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살아온 대로 얼굴에 흔적이 어쩔수 없이 남는다. 가입해서 가끔 들어가보는 싱글카페에 올려진 사진들을 보면 사람들의 모습이 대체로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내 얼굴에도 그늘이 있겠지만, 혼자인 사람들의 모습엔 감출 수 없는 그늘이 그대로 눈에 띈다. 


지나치게 가볍거나, 혹은 음험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한동안은 들어가지 않다가 가끔 나 혼자 너무 외로운 것 같을 때, 나 만큼이나 외로워서 누군가 만나기를 원하는 이들의 숱한 사연들이 있는 그곳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읽고, 가끔 스스로를 위로하며 창을 닫곤 한다.


그 카페에서 알게 된 친구가 소개해줘서 알게 된 30,40대 싱글카페에서 모임에 나가본 적이 있다. 우수회원이 되어야 모임을 주도할 수 있는 나름의 규칙이 있는 곳이고 혼자여서 외로우면서도 그 외로움을 공유하며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이들이 많은 곳이어서 처음 가입했던 곳보단 두 번째 가입한 카페 분위기를 선호한다. 나는 우수회원이 아니어서 마침 우리 동네에서 어떤 우수회원이 주도한 모임에 갔었다.

 

첫 모임에 나가보니 좋은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내가 참석한 여행모임은 자녀들도 동반한 여행모임으로 가족적인 분위기로 즐겁게 잘 지내고 끝났다. 그런데 뒤에 들리는 이야기는 그다지 기분 좋지 못했고, 내 후기에 올려진 사진을 여자회원들이 내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쳐서 사진을 몇 번씩 수정하고 후기를 손질하는 과정을 거쳤다. 음해성 루머가 생길 수 있는 여지를 보고선 실망해서 다시는 모임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다시금 쓸쓸해지고, 그 겨울엔 매사에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 한동안 침잠한 상태로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지냈다. 사람에 대해 실망할 때마다 조금은 시간이 필요하다. 동성은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한 사람도 있으니 이성이든 동성이든 사람은 정말 가려서 만나야 한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20대에 몇 년간 편지를 주고 받던 그들은 어디서 뭘하고 지낼까.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그땐 다들 편지지에 편지를 썼기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데 요즘은 쉽게 쓸 수 있는 이메일 조차도 한 통 쓸 곳이 없다. 마음이 영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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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눈을 낮추라고 한다. 어제 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코웃음을 쳤다.

"맘에 들지도 않는 남자 만나서 뭐하려고? 진짜 웃기네....."

만일 딸도 나더러 눈을 낮춰야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면 정말 내가 이상하다고 느꼈을텐데 10대 청소년인 내 딸도 그 말에는 내 맘 같은 반박을 했다. 예쁘고, 날씬하고, 요리 잘하고 돈도 잘버는 여자를 찾으면서 나더러는 외모는 못나고 경제력도 별로고 자칭 성격만 괜찮다는 사람을 추천해주는 심보는 뭘까? 


나는 눈이 높은 게 아니라, 내 눈높이에 맞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뿐이다. 재벌2세나 절세미남이나 기타 등등 내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황당무계한 상대를 찾는 것이 아니다. 고로 나는 눈 높은 게 아니다. 말이라도 통하면 좋겠다. 게다가 뭔가 느낌이란게 이성간엔 좀 필요하지 않을까? 

 

또 그냥 이렇게 한바탕 마음이 어수선해져서 누군가 찾으려하다가 빗장을 채우고 몇 년은 세상에 별 남자 없다. 그냥 이대로 살자며 세월 보내게 되겠지. 그래, 사는 게 그렇지. 내생에 또 여자로 태어나면 그땐 한참 젊고 예쁠 때 좋은 사람 만나서 알콩달콩 화목한 가정 꾸리고 살고 싶다.

 

사실, 욕심 같아선 지구에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지만. 숙제를 아직 마치지 못해서 또 와야 할 것 같다. 다시 와서 살 곳과 만나야 할 인연을 이 생에 좋게 매듭짓고 잘 살다 가면 좋겠다. 이만하면 행복하다. 그저 조금 외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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