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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5>

7월 14일

by 자 작 나 무 2015. 7. 15.

오늘 딸에게 새 별명을 지어줬다. 딸이 학교에 도착했을 시각에 문자가 정신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중간에 문자가 오다가 사라진 것이 있어서 전후 관계가 맞지 않게 언제 갖다줄 것인지를 종용하는 말들로 도배가 되었다. 휴대폰을 학교에 제출해야 하니 빨리 답을 하라길래 최대한 빨리 갖다준다고 답해 놓고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1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 맞춰서 학교에 도착하려면 갑자기 계획에 없던 외출을 준비하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그래도 어떻든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딸에게 필요할 때 항상 지원군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딸이 갖다 달라는 것을 챙겨서 학교에 가져다주고 왔다. 도무지 빼먹고 가서는 안 될 것을 잊고 갔다. 혼자 알고 혼자 웃기엔 아까워서 사서 선생님이랑 그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박장대소하며 웃다가 학교를 나왔다.

 

딸에게 그 일로 새 별명을 지어줬더니 앞으로 이메일을 새로 만들거나 아이디 만들면 그 이름을 영문으로 만들어서 쓰겠다 했다. 정말 이 사건에 어울리는 적절한 별명이다. 여태 내가 학교에 가져다준 물건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므로 기록해둔다. 뭔지 말하면 딸에게 맞을 것 같아서 요기까지만.

 

방귀 이야기 썼다고 말했더니 나를 샌드백처럼 막 두들겨 패듯 때려서 눈물이 찔끔 나게 맞았다. 그래도 나중엔 고마워할 것이다. 엄마가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적어놔서 많은 것을 추억하며 언젠가 웃을 수 있을 거니까.

 

**

나는 아직도 2G폰을 쓰고 011 번호를 고수하고 있다. 내게 스마트폰은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니어서 바꾸지 않았다. 근데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 카톡을 하지 않으니 단체 톡 방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를 제대로 듣지 못해 문제가 생긴 적이 있어서 카톡 아이디를 하나 개설했다.

 

스마트폰은 딸이 쓰다가 바꾼 구형 아이폰이 잠자고 있어서 그걸로 와이파이 가능한 곳에서 개통되지 않은 빈 휴대폰도 카톡이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양한 기능을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국정원에서 이탈리아에서 극비리에 샀다는 해킹프로그램은 이미 오래전에 '파파이스'를 통해 들은 바가 있어서 카톡이 언제든 털릴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야 주요 인물이 아니니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검열당할 수 있는 개인 메신저를 이용한다는 게 그다지 유쾌하지는 못하다.

 

파파이스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뒤 곧바로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텔레그램'을 깔았다. 그다지 사용할 일은 없었지만, 카톡보다는 믿음직한 프로그램이다. 아이폰을 오랜만에 켰더니 누군가 텔레그램에 메시지를 남겼다. 근데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다. 가끔 이상하게도 인도 사람 같은 사진이 올려진 낯선 남자가 'Hi'라고 인사를 남긴다. 어떤 경로로 내게 인사를 남기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차단하고 말았지만, 몇 번 반복되니 이상하긴 하다. 근데 오늘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개설한 아이디가 범어로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이어서 아이디 검색하여 친구 찾다가 내 아이디가 눈에 걸려서 그런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봤다.

 

처음 온라인에 아이디를 만들 때,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은 거의 다 이미 사용하고  있으니 안된다 하여 마침 아이디를 만들 당시에 읽던 책에서 맘에 드는 단어였던 'Mukti'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엔 일관성 있게 혼돈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같은 아이디를 만들어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너무 과분하고 무거운 이름을 쓰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워서 더 간단하고 쉬운 말을 찾다가 새로 만드는 아이디는 거의 Vasana를 사용하게 되었다.

 

Vasana는 카르마에 대해 언급을 할 때 사용될 수 있는 산스크리트어로 본성에 잠재된 의식 성향, 습관 에너지, 카르마의 잔류물 중 의식적인 부분을 이르는 불교적 용어이다. 근데 한편으론 우리 언어가 아니다 보니 미묘한 다른 뉘앙스를 지닌 뜻으로 오인할 수도 있는 말이기도 하다.

 

Vasana에 이끌려 다니지 말고 오랜 지문 같은 잠재된 습기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욕망과 관련된 단어를 갖다 쓰려고 한 것인데..... 세상은 요지경, 사람들의 생각은 천차만별이다. 이름은 자신을 대변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자신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는 말을 가져다 쓰는 것이 이름으로써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만들거나 가져다 쓰는 말이 내 무의식과 연계되어 결국 자신의 어떤 일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표현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사람들마다 쓰는 닉네임을 보면 은연중에 너무나 자신을 잘 드러내는 말을 쓰고 있다. 

 

나는 적멸을 원하였으나, 카르마에 이끌려 인연을 찾게 되고, 나를 힘들게 했던 많은 것들이 나를 키우는 채찍과 같았으니 모두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게 됨으로써 괴로움도 즐기고 즐거움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몹시 괴로워서 고뇌하고 애가 타지 않는다면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의 통증을 유발할 수 없고, 결국 우유부단하게 Vasana에 파묻히게 되므로 고난은 필요악이다. 모든 Vasana가 퇴치해야 할 나쁜 습기는 아니다. 벗어나야 바람직한 전생에서 기인한 듯한 굳은 습성 같은 것을 두고 나는 Vasana란 단어를 대입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비록 기억하지 못하여도 인생에 주어진 고난은 자신이 설계한 인생에 스스로 선택한 과속방지턱이다. 열렬히 원하는 바가 없으니 좀 사는 게 시들해졌지만, 아직은 봄 소풍 즐기듯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고 혼자 말하곤 한다. 그렇게 되뇌다 보면 사실이 되기도 하니까. 현재 한국의 정치사는 완전 형편없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이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우매한 국민들의 일부가 생각의 변화를 일으킬 계기가 여러 번 있었으니 어느 날 조금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가지 않을까.

 

***

생각나는 대로 마구 쓰다 보니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들쭉날쭉하다. 내 일기장이니 내 맘대로. 정리 덜 되었으면 어때. 

 

카톡보다는 텔레그램~! 세금으로 그런 비싼 프로그램 사다가 국민들 뒤를 캐다니! 공론화되었으니 한마디 해도 되겠지?

 

텔레그램에 가입한 친구가 많지 않아서 가볍게 인사를 건넬 곳도 없어서 프로그램을 닫았다. 내 대인관계는 왜 가벼울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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