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문득 책장에 꽂혀있던 여행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읽다가 펼쳐둔 책이 몇 권 있는데 또 다른 책에 손이 간다. 그 책의 저자 이병률 님의 소개 글 첫머리에 '멀리 떠나서야 겨우 마음이 편하니 이상한 사람.'이라고 씌어 있다. 나도 그러하다.
마음에 바람이 불고, 이제 어디건 힐끔힐끔 쳐다볼 여유도 생겼다. 오늘 지인 중 한 분은 한 달 일정으로 호주로 떠나셨고, 한 친구는 일 때문에 프랑스 행 비행기를 탔다. 나는 뜬금없이 배웅을 핑계로라도 멀지만 않았다면 공항에 가보고 싶었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기보단 나도 어디론가 가방 하나 싸서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된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딸에게 내가 혼자 며칠 여행을 다녀오면 어떨까 하고 물었더니 곧바로 정색한다. 항상 같이 여행을 다녀서 나 혼자 어지간해선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데 정말 큰맘 먹고 그런 말을 했는데도 가차 없이 싫다는 것이다.
이젠 어지간해선 함께 바깥으로 나서긴 어려운 상황이 되버렸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어릴 적에 주말마다 어디든 데리고 다니던 때처럼 함께 길을 나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 많이 다니길 참 잘했다. 딸을 혼자 두고 어디 갈 엄두가 나지도 않는데 괜한 말을 해본 것이다.
오늘은 낮에 거울 앞에서 옷을 이상하게 입고 웃기는 행동을 좀 했더니 나더러 갱년기냐고 묻더니 제발 밖에 좀 나갔다가 오라는 것이다. 밖에 놀러 못 가서 엄마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줄은 아는 모양이다. 같이 가자니 무슨 심보인지 그건 또 싫단다. 아예 호주나 뉴질랜드로 데려가 주면 몰라도 다른 덴 싫단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안에 갇혀 있다 보니 오늘은 가슴이 좀 답답해졌다. 지리산 자연 탐방로 사진들을 펼쳐놓고 혼자 한적한 길을 걷는 상상이라도 해보고 싶은데 더운 바깥 날씨가 내 상상 속에서조차 길을 막아선다. 다음 주말엔 딸이 여름 방학하니깐 어디든 꼬드겨서 바람 쐬러 나갔다 와야겠다.
오늘은 밤늦게야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져서 나는 혼자 책 몇 장을 넘기다 머릿속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혼잣말을 이렇게 옮기고 있다. 살 뺄 거라고 저녁엔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던 딸이 오후에 만들어놓은 닭갈비를 한 접시 가져다 먹고 기운이 뻗치니 이 밤에 피아노를 친다고 제 방에서 나오질 않고 있다.
딸이 더 자라면 나는 주말마다 반복되는 이 심심함을 뭐로 극복하며 살아낼지 걱정이 된다. 바쁘면 이런 생각도 하지 않게 되겠지만, 나는 적어도 주말의 여유를 즐기며 살 권리 정도는 뺏기고 싶지 않다. 열린 창 너머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어쩐지 마음이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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