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딸이 처음으로 내 머리 염색을 해줬다. 염색약이 독하니 자주 하면 좋지 못하다고 검게 길어나오는 머리카락을 그대로 방치하니까 보기 싫다고 다시 염색을 하란다. 다른 아줌마들은 밝게 염색하면 촌스러운데 나는 염색을 안하면 촌스럽다는 것이다. 매일 나를 관심있게 봐주고, 신랄한 평가를 해주는 유일한 대상인 딸이 하라면 해야지.
내가 버틴다고 내게 큰 이득이 될 것이 없는 문제는 어지간해선 딸의 의견을 따른다. 옷도 골라 입었는데 촌스럽다거나, 대놓고 할매같아 보인다고 아주 악담을 하는 경우는 툴툴거리면서도 곧바로 다른 옷으로 바꿔입는다. 엄마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는 게 고맙다. 엄마가 뭘 입거나 어찌 하고 다니거나 아무 관심없다면, 우리 두 사람은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이나 가족으로 함께 하는 의미가 점점 희미해져서 외로움을 더 심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어제 같은 경우만 해도 조금 머리가 길어나오면 딸 친구 엄마가 하시는 동네 미장원 가서 부분 염색을 하곤 했는데 그게 어쩐지 부담스럽다 말했더니 딸이 염색약 사오면 발라주겠다 해서 어제 처음 시도를 해봤다. 10분 내외로 얼른 발라야 할 염색약을 딸이 꼼꼼하게 바른다며 한 시간 가량 나를 붙들고 있었다.
그래도 그걸 해준다는 게 기특해서 가만히 앉아서 딸의 서툰 손길을 즐기고 있었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 동안 혹시나 저가 해준 것이 색이 제대로 안나거나 얼룩이 질까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오늘 오후에 밝은 곳에서 보니 색이 자연스럽게 잘 나왔다하니 다음엔 더 재빠르게 잘 해주겠다는 말도 곁들여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딸이 있어서 참 좋다. 딸의 잔소리는 엄마인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표현이 서툴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여주면 된다. ** 딸이 나를 챙겨주는 것이 좋아서 때론 일부러 부족한 듯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내가 바를 수 있는 약도 발라달라고 한다. 어쩐지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나를 챙기는 것보다는 누가 나를 챙겨준다는 그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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