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확인하지 않으면 날짜가 며칠인지 알 수가 없을 만큼 시간이 가는 것에 무뎌졌다. 특별히 집을 나서서 뭔가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날만 확인하고 그 외의 날들은 그냥 일과를 적정선에서 마무리하는 정도 이상의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고 있다. 그야말로 신선놀음하듯 편하게 지내고 있던 셈이다. 물론 이 평화와 안정이 무한히 지속하진 않겠지만 지금 주어진 시간을 맘껏 누리며 지내려 한다.
내일은 딸이 다니는 학교에 급식 모니터링을 하러 아침에 나갔다 올 것이고, 다음날은 딸이 꼭 먹으러 가자는 사천 재건 냉면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뭔가 조금 달라진 하루를 보내게 될 것 같다. 어떻든 생활의 변화를 주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최근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쏟아지던 잠을 무한대로 자던 딸이 개학하고 학교 다니느라 조금은 긴장된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밤늦게 야식을 먹던 습관을 버리지 못해 괴로워하며 뭔가 먹기는 하지만 과일이나 가벼운 간식을 먹고 운동을 한다. 작은 변화지만 사흘을 넘겼으니 대견하다.
며칠 전 나현이네 식구들이 저녁 늦게 야식거리를 사 들고 집에 놀러 왔다. 살찐다고 먹지 않겠다던 딸도 그날 사 온 찜닭을 맛있게 잘 먹었고, 손님들을 위해 간단한 먹거리를 만들어내 놓았더니 대학생이 된 그 집 두 딸과 나현이 엄마도 맛있게 잘 드셨다. 우리를 생각해서 찾아와 준 게 정말 고마웠다.
그날 저녁에 함께한 자리에서 나현이 엄마가 뱃살 이야기를 꺼내자 딸이 나를 쏘아보더니 내 뱃살과 옆구리살을 일컬어 '순대'라는 표현을 했다. 나는 살짝 앙칼스럽게 딸의 공격에 응수했다.
"이 정도면 타이어지 순대냐? 그래..... 더 얇은 거로 비교해줘서 고맙네. 아주 고마워......"
요즘은 걸핏하면 살쪘다고 나를 공격한다. 하루 이틀 겪은 일이 아니지만 자주 듣다 보니 약간 신경이 쓰인다. 언젠가 딸이 일 그만두고 쉴 때 운동 열심히 해서 몸짱 아줌마가 되어보면 어떠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대답은 했으나 사실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결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타성에 젖어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살을 나잇살이라며 그냥 웃어넘겨 왔다.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정말 금세 50대가 될 것 같은 후덕한 아줌마 모습이다. 너무 당연하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그전에 자신에 대해 그렇게 깐깐하던 내가 정말 이렇게 게으른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야 하느냐는 하는 생각이 든다. 20대처럼 날씬하고 날렵한 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지방을 근육으로 바꾸는 노력은 좀 해야 할 것 같다.
해지고 시원해지면 밖에 나가서 한 시간가량 걷거나, 밖에 나가지 않는 날은 스트레칭이라도 하기로 했다. 움직이기 시작한 지 며칠 지나고 보니 운동을 하지 않으니 뭔가 빠진 것 같아서 어떻든 몸을 좀 움직여야 개운하다. 역시 운동도 습관이 들어야 하는가 보다. 일단 한 달은 지속해서 운동을 해야 할 것이고, 한 달을 채우면 석 달을 채워볼까 한다. 그럼 겨울을 보내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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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아이패드를 잠시 빌려 쓰고 주기로 했는데 몇 주 정도 서로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해 아이패드를 본의 아니게 내가 오래 가지고 있게 되었다. 그 사이 그 친구는 신형 아이패드를 샀다며 내가 가지고 있던 걸 그냥 쓰라고 했다. 전에 농담 삼아 새것 사면 쓰던 것 나한테 버려달라고 하긴 했지만 진짜 그렇게 되고 보니 좀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뻔뻔하게 잘 쓰기로 했다.
일단 친구가 사놓은 디지털 북을 열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엔 무슨 맛으로 그런 전자책을 읽느냐고 책은 종이책이 제일이라며 가끔 빈정대기도 했는데 먼 길 나설 때 가방에 책을 무겁게 넣어 다니지 않아도 되고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패드로 책을 읽는 것이 간편해서 좋다.
딸의 여름방학 숙제인 책 읽기도 서점에 직접 갈 기회를 제때 잡지 못하고 인터넷 서점을 뒤지기도 애매한 시점에서 디지털 북을 사서 읽게 했더니 거부감 없이 이번엔 잘 읽었다. 한때는 게임을 하기 좋다며 아이패드를 내내 붙들고 있던 딸이나 내가 전자책 읽는 용도로 이걸 사용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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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노트북을 열었더니 카페 쪽지가 와있었다. 얼마 전에 배낭여행 카페에서 새로 발매된 독일 여행 관련 서적 댓글 달기 이벤트가 있었는데 거기 나도 댓글을 하나 달았다. 이벤트 당첨되면 그 책을 보내준다길래 마침 여행 경험도 있거니와 독일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내게는 정말 유용한 여행 서적인 것 같아서 읽어보고 싶었다.
그 이벤트에 당첨되어 여행 서적 한 권을 받게 되었다. 최근에 손미나 씨가 쓴 여행 관련 서적을 전자책으로 재밌게 있던 중이라 읽다 보니 다음 여행을 자꾸만 그리게 된다. 호수를 주제로 한 트래킹과 호수를 끼고 있는 유럽의 도시 몇 곳을 연결하는 여행코스를 메모하고 자료를 찾던 중이다.
프랑스와 독일을 묶어서 여행 계획을 하나 만들고,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묶어서 하나의 여행 계획서를 만들고 있다. 나중에 언젠가 가게 될 것이다. 맘껏 다닐 수 있는 체력과 여행경비와 시간을 만들어야 가능하겠지만 의욕과 계기가 있어야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찬찬히 수정해가며 여행루트를 짜고 세부계획을 만들었다가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나설 참이다. 생각이 먼저 열려야 길이 열린다.
*오랜만에 쇼팽 곡을 듣고 있다. 손미나 씨가 스페인의 마요르카섬에 갔던 이야기를 읽다가 그 섬에서 조르주 상드와 사랑을 나눴던 쇼팽 이야기 한 도막에 그만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아주 오래전에 20대에 즐겨 듣던 곡들이다. 쇼팽 곡은 대체로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울 때 들어야 그윽하게 들린다. 잠시 감정의 호사를 누리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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