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푹 자야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한밤중에 혹은 새벽까지 깨어있는 날은 가슴이 답답하다. 비 온다고 닫았던 거실 창을 열었더니 습기가 훅 들어 친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창을 닫았다.
어릴 때 내가 하고픈 일에 대해 부모님께서 반대하실 것을 미리 알고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포기해야 할 것이 안타까워 온밤 혼자 잠못들고 앓던 때도 이렇게 심장이 아픈 것 같고 가슴이 답답했다. 이 통증이 그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어쩌면 하나도 잊지 않고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통증으로 인해 몸이 기억해낸 이후 흩어졌던 자잘한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유년의 기억들은 그렇게 묻어버린 것이 많았다. 굳이 지금 세세하게 기억할 필요가 없으니 뇌가 알아서 적절히 삭제했거나 덮었을 것이다. 그때도 그랬겠지. 잠들었다 깨어난 후엔 그 욕심들을 내려놓기 위해 혼자 흘린 눈물이 나 가슴이 삼킨 통증들은 모두 기억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너무 일찍 포기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했던 것이 안타깝다. 인내심이 부족해서 인내심을 기르기 위한 훈련을 그렇게 받았던 것 마냥 선택권 없는 힘없는 10대 위에 군림하던 절대군주 같았던 부모님의 슬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더 힘들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내 몸 전체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땐 그렇게 많이 먹고도 살이 쪄본 적이 없었다. 마음 편히 두 다리 뻗고 잔 적이 얼마나 되었나 싶을 만큼 긴장된 상태로 자신을 완벽하게 조율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나이가 한참 든 지금의 내게 군림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 자신뿐이다. 지금 내가 괴로운 것은 내 생각과 욕심을 걷어내는 게 싫은 까닭이다. 그래서 숨을 고르고 또 고르다 보니 가슴이 아프다.
깊이 숨을 들이쉬고는 다시 토해내야 하는데 그대로 속에서 삼킨 숨이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잠들어야 할 때가 넘었다. 이렇게라도 써놔야 생각이 정리가 될 것 같다. 왜 앓는지 자신을 들여다봐야 정리가 되고 사라진다.
5학년 때 반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몇이 여름방학에 담임선생님과 거제명사해수욕장으로 1박 2일 여행을 가기로 했다. 나는 명색이 부반장인데(그 당시 여자는 무조건 부반장만 시켜줬다) 거기 함께 못 가는 게 속상해서 며칠 잠을 잘 못 잤다.
담임선생님께서 우리 어머니를 겨우 설득시켜서 떠나는 날 급하게 합류하게 되었다. 그때 그곳에서 독한 모기에 물려서 다리에 염증이 생기고 그 상처가 심하게 곪아서 다리를 절다가 결국 병원에 가서 외과 수술을 받을 만큼 심각해졌다. 그런데도 보내주지 않으시려던 곳에 내가 다녀와서 아프다고 혼내실까 봐 아프단 말을 못 하고 며칠을 앓았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픈데 그걸 제대로 표현해보지 못하고 억눌렀던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아프기도 했다. 아무에게도 내 속을 드러내고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속은 아주 꽁꽁 감추고 적정선 이상은 표정으로도 내비치지 못했다. 그게 병이 되어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감추지 못하고 뭐든 말을 해버리는 사람이다. 딸에게든, 블로그에 털어놓던지 어떻든 말해버리면 한결 가벼워진다. 가끔 반절이라도 꺼내놓으면 덜 힘드니까 이렇게라도 써야 한다.
여전히 열심히 더 살아내야 할 날들이 남았으므로.....
나는 나를 지극히 사랑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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