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엔 간혹 아팠어도 아플 때마다 대체로 블로그를 하지 않고 지냈다. 그래서인지 아픈 것이 낫고 나면 언제 어떻게 아팠는지 쉽게 잊어버린다. 아팠던 것을 낱낱이 기억하는 것보단 그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도무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기침에 시달리고 잠을 설치며 괴롭게 지냈던 것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봄꽃이 피고 조금씩 밖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 이후로는 거짓말처럼 말짱해졌다.
2월 말 이후에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다시는 그렇게 아프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슬슬 피곤하고 기침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젠 밖에 나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속에서 걸어 다닐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 맡엔 코를 풀고 가래를 뱉은 티슈가 수북하게 쌓이고 목안은 찢어질 듯 아프다. 이전에 같은 증상으로 동네 내과에 갔을 때 받은 처방이 그다지 맞지 않아 이비인후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도 아플 만큼 아픈 뒤에야 나았다.
이번엔 이비인후과부터 갔다. 약을 먹어도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저 약 먹고 잠들어서 이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오늘로 나흘째 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어제 밤늦게 갑자기 어릴 적에 먹던 김치국밥이 떠올라서 진한 멸치국물로 김치죽을 끓였다. 그나마 사흘 만에 처음으로 뭔가 음식 같은 걸 먹은 셈이다.
덕분에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코는 답답하고 목안은 26년 전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고 마취가 풀린 다음 목안이 찢어지는 듯 했던 통증에 비견할 만큼 엄청난 통증이 전신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학교 다녀오면 제 할 일도 바빠 집안 일이라면 손도 까딱 않는 딸에게 집안일을 좀 시켜보려니 말하기도 답답해서 그냥 두었더니 정말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싱크대 아래 배수관 공사 이후에 더 쉽게 잘 막히는 주방에 막힌 부분을 뚫어내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김치죽을 쑤어 먹고 나니 한결 기분은 나아졌다.
아직 청소를 말끔하게 하지 못한 게 자꾸 눈에 거슬리지만 지금 내 몸 상태로 저걸 다 치우려다간 다시 며칠은 앓아야 할 것 같아 참아보기로 한다. 보리차를 끓여서 수도 없이 마셨더니 화장실 들락거리는 것도 일이다. 일어날 때마다 어지러워서 어딘가 부딪혀서 다치진 않을까 신경 써야 할 정도로 온 몸이 약 기운에 절어있다.
이럴 때가 아니면 써서 잘 타먹지 않는 쓰고 맛없는 도라지청을 한 잔 타 먹고 다시 누워야겠다. 다시는 이런 종류의 통증에 시달리며 지내고 싶지 않다. 어떻게 몸을 잘 돌봐야 할지 다 낫고 나면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