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처에 널린 슬픔과 아픔이 너무나 크다. 무지함으로 인해 겪지 않아도 고통을 무한히 생산해내는 이 세상은 때론 지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 앞에 놓인 슬픔을 걷어내도 타인의 고통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 통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 시절 감복하고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던 지장보살 서원을 하였건만, 내 무슨 힘으로, 무슨 능력으로 또 다른 삶과 고통을 이겨낼 것이며, 타인의 고통을 무슨 수로 받아내고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싶다.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
내 곁에 누워서 세상모르고 자는 저 아이, 큰 시련 없이 살아낼 수 있는 무한한 사랑 줄 수 있는 만큼 주고, 그 사랑의 힘으로 지혜와 힘을 길러 딸의 앞날과 주변의 사람들의 앞날에 또 다른 지혜의 길이 열릴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은 무척 오랜만에 잊고 지내던 온갖 감정들이 비처럼 쏟아진다. 슬픔도 기쁨도 환희도 절망감도 한꺼번에 시차를 두고 차례로 쏟아진다. 아무 일 없이도 내 속에서 천둥이 치고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진다.
이 세상의 무지와 고통을 지고 등신불이 되어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자 했던 어떤 사람이 있었다. 나는 도무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깊은 깨침과 그로 인한 큰 힘과 지혜를 갖춘 분이었다고 기억한다. 차마 그때는 내 눈으로는 다 가늠할 수 없었던 큰 사람이었다. 그 발끝이라도 따라잡고 싶어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었다.
오늘 느끼는 이 회한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종류의 슬픔을 이렇게 아프게 느끼게 될 줄이야. 눈 밝은 사람들이 일궈낸 지혜가 어두운 밤길을 찾는 이들에게 저 멀리 몇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오래전에 사라진 빛이라 할지라도 별빛처럼 반짝여 그 빛을 잠시 동냥하여 눈이 밝아진다면 이 슬픔의 크기도 줄어들까..... 이런 아픔은 정녕 수억 겁 반복되어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필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바람에 날아든 홀씨가 가슴에 뿌리내리고 싹이 돋아, 한 그루 나무가 된다면....... 이렇게 아픈 것에도 감사해야 하겠지. 타인의 입장과 아픔을 충분히 고려할 수 없는 좁은 식견으로 함부로 말하지 말자. 속으로 생각을 되뇔지언정 목소리가 큰 사람은 특히나 그 입놀림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겨누고 하는 말이거나 그런 의중이 없이 생각을 꺼내놓는 정도라 할지라도 목소리가 큰 사람은 더욱 조심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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