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동안 건물 내 물이 지나는 관이 얼었는지 물이 나오지 않았다. 첫날은 사우나에서 씻고 와서 집에서 잤다. 다음날 물을 틀어보니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딸은 아직 봄방학 전이라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 하고, 저녁엔 집에서 조용히 공부하는 아이라 우리만의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다.
물이 나오지 않게 된 둘째 날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에 갔다. 부킹닷컴에서 비수기 평일 특가로 올라온 것을 보고 예약하고 가서 편안하게 하루를 잘 보내고 왔다.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탄복하게 된다. 자주 이곳 산책길을 걷고 자주 보는 곳이지만, 따뜻한 공간에서 바깥은 내다보는 기분은 더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에 취하게 하는 안락함이 더해졌다.
아침을 먹으며 해뜨는 광경을 봤다. 나 못지않게 딸도 이 풍경에 탄복하며 좋아했다. 아주 오래 통영에 살면서도 아침에 실내에서 이런 광경을 보는 건 처음이다. 자꾸 봐도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여행 온 듯 하룻밤을 따뜻한 곳에서 잘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고 집은 썰렁하기 짝이 없다.
일주일에 한두 번 모아서 세탁기 돌리던 빨래는 사흘간의 단수로 꽤 쌓였고, 좁은 설거지통은 물 마시고 커피 마신 컵만으로도 그득해졌다. 낮엔 친구네 딸 졸업식 뒤에 점심 식사에 초대받아서 함께 점심 먹고 그 친구네에서 시간을 보냈다.
뜨는 해는 바다에 더 엄청난 빛을 드리운다. 황홀하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집안에서 전전긍긍 해봐야 달라질 게 없는 상황이어서 하룻밤 묵었던 리조트에서 보낸 시간이 온몸에 누적됐던 피로의 많은 부분을 날려줬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 다시 나와야만 했던 상황 때문에 어제 종일 약속을 잡아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오늘은 드디어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몸은 피곤하지만 어떻든 변화가 있었던 이틀간의 일정이 침잠해있던 내게 기분 좋은 일탈이 되었다. 지금 느끼는 이 노곤함이 좀 잦아들면 밀린 청소와 설거지를 마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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