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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8>

3월 5일

by 자 작 나 무 2018. 3. 5.

가만히 오래 고여있었다. 세상으로 뚫린 문이라곤 집 밖으로 나설 수 있는 저 문뿐인 건가? 아직도 011 쓰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2G 폰을 쓰지만, 딸이 쓰다가 쓰지 않게 된 헌 스마트폰으로 와이파이를 이용해 남들이 온라인에서 이용하는 대부분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전화나 문자는 2G로 받거나 스마트폰으로 받거나 별 차이 없지 않은가.

 

텔레그램을 열어놓았으나 주변에 사용하는 이가 적어서 카카오톡을 주로 이용한다. 그 문도 역시 문이렸다. 하지만 내가 공연히 말을 걸거나 하는 일이 없으므로, 꼭 필요한 일이 있어 연락하는 것 외엔 그 조차 쓸 일이 없이 지낸다. 딸과 함께 있는 시간 외엔 적막강산이다. 하루 종일 혼잣말 외엔 말을 할 일이 없다. 그래도 외롭거나 심심하거나 하진 않다. 그래서 더 익숙해진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세상 밖으로 나갈 문은 있으나 나갈 일이 없으니 조용히 있을 따름이다. 올해 내 직업은 고3 엄마다. 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즉각 구해주고 해결해주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먹고살아야 하니 뭔가 일은 해야겠는데 학생들 가르치는 일 외엔 일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올해도 그런 일 외엔 다른 일을 할 계획이 없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계속 살아낼 수 있을지 가끔 불안하다. 딸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 이것이 내가 움직이고 일을 하는 유일한 원동력이다.

 

악착같이 돈 벌어서 명품 사고, 좋은 집 사고, 좋은 차도 사고 그러면 좋으려나? 난 그럴 생각없이 살아서인지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그쪽엔 관심이 없다. 먹고사는데 지장만 없으면 딱히 과한 육체적 노동, 정신적 노동에 시달리며 통장 잔고를 채우는 재미로 살고 싶진 않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다 있다. 오히려 물질적인 것들 중엔 버려야 할 것이 더 많다. 끼니를 때울 새 식재료만 잘 사들이면 그만이다. 좋게 말하면 가난한 자의 단출한 삶의 지혜라고나 할까. 나쁘게 말하면 경제적 무능력자의 자기 합리화.

 

고여있는 나를 자극하는 글을 읽거나, 장소가 바뀌어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면 그제야 이런저런 생각들이 흘러나온다. 평소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산다. 그렇게 사니까 속 시끄럽지 않고 몹시 편해서 그리 살다 보니 요즘은 내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진다. 올봄엔 정신 차리고 뭘 해야 할까......

 

일단 동백꽃이 피었을 때 한 번도 못 가본 장사도에 다녀올 것이다. 다음에 통영을 떠나 살면서 그 섬에 못 가본 것이 아쉬우면 다시 통영을 찾는 일이 얼마나 번거롭고 힘든 일일지 생각하면 올해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딸과 함께 가면 좋으련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훨씬 바쁘니 혼자 가서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여줘야겠다.

 

그다음엔 매화를 보러 가고, 그 다음엔 벚꽃 놀이하러 쌍계사에 다녀와야겠다. 할 수 있다면..... 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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