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준비되어 있었어야 했다. 좀 더 긴장하고 꼼꼼하게 살폈어야 했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게 되면 더 힘들다. 2월 초에 갑자기 들이닥친 추위에 며칠 물이 안 나와서 불편하고 불안한 상태로 동동거릴 때 내가 찾던 일자리 공고가 일제히 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조용히 생각하고 자주 찾던 사이트를 뒤질 여유가 없었다. 아차 한순간에 그 드문 기회가 내 앞에 스치지도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교육지원청에 뜬 공고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각 학교에서 공고를 학교 게시판에만 띄운 곳이 있다는 것도 뒤늦게야 알았다. 2월에 내가 적극적으로 잡았어야 할 기회를 놓치고 나니 자신에게 화가 난다. 한때는 목이 너무 아파서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일을 못 했고, 그 외에 일할 수 없을 때는 적당한 이유와 핑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 이유와 핑계 없이 일을 못 하게 되어서 속상하다.
다른데 정신이 팔려있었던 까닭이다. 쉬운 다른 기회를 기다리느라 더 좋은 기회를 알지도 못하고 놓쳐버렸다. 이미 한참 지난 일인데 오늘은 유난히 더 속상해서 한순간 그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당장 밥 굶을 정도는 아니지만 몇 달이나 일없이 놀았으면 이젠 일을 해야만 한다.
기다리던 공고를 기한이 지나고 나서야 보게 된 다음 며칠 전전긍긍하다가 딸에게 물었다.
"나..... 어디 마트 시간 알바라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엄마는 그런 일 못 해. 화장실 자주 가고 싶어서 화장실 들락거리다 바로 잘릴걸......"
어떻든 힘들게 다른 일 찾지 말라는 말을 에둘러 그렇게 했다. 엄마가 돈은 안 벌고 너무 오래 빈둥거리는 거 보기 싫고 불안하니 아무 일이라도 해서 돈 벌어오라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어쨌든 나는 딸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웠다. 약간의 죄책감이 잠시 가벼워졌다. 그리고 며칠을 버티고 다시 평정심을 찾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된 상태라 그 평정심은 오래 유지할 수가 없었다. 괜히 안 들어가던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나도 모르게 놓친 일자리(물론 내 몫이 되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를 하나 더 발견하고 나서 속에 열불이 났다.
운동 좀 하고, 따뜻한 물로 씻고 한심해서 속상한 나를 어떻든 달래본다. 이 상태에서 더 우울하고 힘든 생각 하면 그야말로 최악이 될 테니 지금 이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들을 해본다. 분명 뭔가 이렇게 어긋나게 된 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좀 더 쉬어야 할 이유가 있겠지.
너무 속 태우지말고 보너스처럼 주어진 시간에 뭔가를 하면 된다. 엊그제 폭탄 맞은 것 같은 옷방 정리를 전격적으로 하고 버려야 할 쓰레기도 정리를 열심히 한 것처럼 돈 버는 일은 아니어도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많은 잡다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너무 자신을 옥죄지 말아야지. 이래도 살아야 하고, 저래도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