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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4>

꿈을 부는 아이

by 자 작 나 무 2018. 7. 26.


2004년 9월 9일 23:33

 

우리 집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면 도로를 끼고 놀이터가 있고 놀이터 앞은 바닷가. 집 앞엔 저렇게 밭이 있다. 낡고 불편한 집에서 이사를 나가지 못하는 많은 이유 중에 내 형편에 더 좋은 집 찾아 이사하기 어렵다는 것은 제외하고 이런 환경이 드물다는 것이다.

 

언제든 보고 싶으면 바다를 볼 수 있다. 옥상에 올라가도 볼 수 있고, 골목만 빠져나가면 바다가 보인다. 어릴 때 내가 자라던 집은 마당이 넓어서 갖가지 나무가 있었다. 겨울엔 마당에 있는 나무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달아놓고 즐거워했었고 봄이며 여름이면 파랗게 온통 벽을 덮고 자라던 담쟁이며, 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피던 딸기 냄새나는 덩굴장미의 빨간 미소로 한없이 행복했던 담장 옆 대문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였다.

 

내가 태어나 자랐던 그 집은 10년 전 도로 확장 공사 때문에 사라져버렸다. 지금 사는 집이 비록 내 집도 아니요, 그만큼 나무나 화초가 있는 마당은 없지만, 아이가 나만큼 자라면 하늘을 향해 비눗방울 불던 시절이 그리워질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모래 놀이를 하며 자란 아이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유년의 기억 중 아프고 슬픈 부분은 내가 그러했듯이, 슬며시 가려지거나 희미해지고 부디 아롱아롱 비눗방울 같은 꿈같은 기억만 또렷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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