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뜨물로 구수하게 시래깃국을 끓여놓고 사 온 갈치 중에 굵은 것만 골라서 몇 토막 굽는다. 갈치 굽는 냄새가 좁은 집안에서 진동하다 열린 창 너머로 마당까지 넘어간다. 갈치를 처음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기분이 들뜨고 좋은지 모르겠다.
며칠쯤은 식단에 신경을 못 쓰고 대충 먹이다 뭔가 신경 써서 음식을 할 때 기분이 꼭 이렇다. 엊그제 싱싱한 고등어를 사다가 찌개 끓여서 맛있게 잘 먹고 한 그릇 아직 남았는데 데워서 먹을 생각 않고 새로 입맛 돋울 음식을 마련하는 내 꼼꼼하지 못한 살림 솜씨는 누가 흉볼 사람 없으니 괜찮다.
데워 내놓으면 한 때 맛있게 먹은 걸 다시 맛있게 먹진 않는 아이라서 신경이 쓰인다. 매번 끼니때마다 다른 반찬을 해주진 않지만, 오늘은 산에도 다녀오고 바람 쐬고 돌아오는 길에 함께 시장도 보고 한숨 곤하게 자는 것 보고 편안하게 음식 준비를 했다. 아이가 깬 후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이 평범하고 사소한 일 하나로도 나는 한껏 융단 위에 떠 있는 기분이 든다.
싱싱한 생선구이를 국물과 함께 맛있게 먹는 아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꿀꺽 넘어간다. 푼수같이 살살 웃으며
"맛있지? 맛있지?"
그렇게 묻는 내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응"
하고 고개만 끄덕여 대답하는 아이지만 그래도 좋다.
예전에 김치 담가서 일부러 크게 뚝 뜯어서 줄기째 입이 미어질 정도로 매운 걸 쑥 넣어주시고는 맛있냐고 물으시던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난다. 나는 몇 번은 내 아이처럼 그렇게 시퉁하게 대답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몇 마디의 감탄사를 덧붙이게 되었고, 그 감탄사와 함께 맛있게 먹어주는 내 얼굴을 보는 게 재밌으신지 더 맛있는 걸 많이 만들어주시곤 하셨다.
볼이 미어지게 음식을 입안에 넣고 요리조리 돌려가며 맛있게 먹는 저 아이도 언젠가 자라서 내 음식에 미사여구를 붙여줄 날도 있으려니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이렇게 작은 것에도 우쭐하고 만족스러워하면서도 왜 끊임없이 뭔가 바라는 마음이 생겨날까. 결국 욕심내어 덥석 쥐어오지도 못 하는 일들을 망설이고 욕심내는 이 마음이 밉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따뜻한 방안에서 큰 근심 없이 잠들 수 있는 나의 소박한 하루에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누울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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