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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문득 옛날 사진을 보고......

by 자 작 나 무 2020. 7. 28.

7월 16일

딸을 낳고 첫 여행을 떠났을 땐 필름 카메라를 들고 갔다. 그때 찍은 사진 한 장이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그때의 기억이 지금 만큼 선명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전에 여행을 다녀왔는지는 사진이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은 욕지도에서 섬 문화축제라는 행사를 해서 뱃삯이 왕복으로 무료였다. 친한 후배가 아침에 갑자기 전화해서 욕지도에 같이 가자고 해서 그 섬에 가는 배를 처음 탔다. 통영에 살면서 그 전엔 주변 섬에 가볼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여름방학 때마다 해수욕하러 가던 비진도는 질리도록 다녀서 더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무슨 행사만 하면 가는 한산도는 제승당만 갔다가 사진 찍고 돌아오는 곳이었다. 그보다 먼 섬은 그저 섬일 뿐이었다.

 

2003년이면 내 나이 서른네 살이었다.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궁금하면 옛날 일기를 열어서 읽어본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지만 돌아가도 그보다 더 잘 살아낼 자신은 없다. 

 

무언가 시작된 시점과 마무리된 시점을 돌아보면 어떤 인연이든 내 인생에서 뭔가 더 채우고 다듬어야 할 부분을 발견하게 해준다. 가볍게 스치는 인연은 두 번 생각할 여지도 없지만 여러 번 스치는 인연은 혹시라도 전생에 뭔가 얽힌 것이 남아서 풀어야 할 숙제가 있기나 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때 섬에 같이 갔던 후배는 그사이 결혼해서 아이를 셋이나 낳았고, 삶에 안착하여 특별한 일없이는 찾지 않게 되었다. 둘째인지 셋째 낳았을 때 보러 갔다 온 후엔 SNS에 올리는 가족사진을 보고 잘 지낸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언제 다시 우연히 만나도 엊그제 만났던 사람처럼 반갑게 인사하고 헤어질 그런 인연이다. 나를 오래 붙들어두고 인생의 여러 장면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인연은 딸뿐이다. 딸과 함께 성장한 내 인생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삶은 얼추 마무리된 것 같다.

 

한 번의 탄생으로 몇 번의 윤회를 겪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이번 생은 각기 다른 얼굴로 삶을 여러 번 살 게 된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선명하게 보인다. 타인의 삶의 일면을 보면서 내 삶의 일면이 거울처럼 비쳐 보일 때가 있다. 나도 이런 사람이구나, 혹은 나는 이런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자신을 가지런하게 내 자리에 다시 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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