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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작은 폭발사고

by 자 작 나 무 2020. 8. 6.

 

밖에 나가서 볼일 보는 동안 딸에게 청소기 좀 밀어놓으라고 했더니 뭔가 아주 적절하게 상황이 맞아떨어져서 바퀴벌레 퇴치용 스프레이가 거실 바닥에 떨어지면서 폭발한 모양이다.

 

건물 계단에 올라오면서부터 화학전이라도 한 번 치른 듯한 불쾌한 냄새가 진동한다. 불난 뒤에 나는 석유제품 찌꺼기 탄 냄새 같다.

 

청소기에 걸려서 그게 어찌 넘어져서 폭발했는지 당황한 딸이 우물쭈물 설명한다. 창문부터 다 열고 치웠으면 좋았을 걸 폭발한 통 주변에 지저분해진 것을 급히 닦느라고 환기를 충분히 시키지 않아서 냄새가 독하다.

 

공기 순환기 켜놓고 걸레로 여러 번 닦아내고 뒷정리 끝난 뒤에 책상맡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딸을 안아주니까 그대로 엉엉 운다.

 

"엄마도 없는데 얼마나 놀랐을까, 우리 강아지...... "

 

나도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커피 한 잔 내려서 마시고, 댓글 몇 개 달고 놀면서 놀라고 긴장된 감정을 풀어낸다.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큰일 날 뻔했다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큰일은 나지 않았고 전화할 데도 없다. 

 

나도 딸도 멀쩡한데 넋이 나간 것처럼 허하다. 안 먹어도 될 맛있는 음식을 주문해서 같이 먹고 또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았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침묵이 흐르는 방에서 노래를 듣다가, 인터넷 창 열어 쇼핑하다가...... 잠들었다 깨서 평소에 먹지 않던 비싼 간식을 먹는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나를 흔든 거다. 폭발사고 뉴스를 본 충격이 고여있다가 사소한 일에 화들짝 놀라서 터진 거다. 불 나지 않은 게 어딘가.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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