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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비 내리는 저녁

by 자 작 나 무 2020. 8. 7.

사람 숲을 지나오니 갈증이 어느 정도 풀린 모양이다.

 

이제 내 앞에 주어진 현실에만 눈이 간다. 잠시 이곳을 비운다고 연락할 친구가 그리 많지는 않아서 얼굴 한 번 보고 밥 먹어야 할 친구를 차례로 만난다.

 

그래도 잊지 않고 내 생사를 확인해주는 몇 사람 외에 내 시시콜콜하고 별 볼 일 없는 일상에 대해 아는 사람은 카페 게시판을 읽는 사람이 전부다. 어디 멀리 가면 간혹 행방을 공표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내가 갑자기 어떤 이유에서 거나 목적지를 밝힌 뒤 돌아오지 않고 사라지면 내 행방을 알 수 있거나 알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흔하게 형제자매간에 혹은 부모와 주고받는 소통을 완전히 끊은 지 십수 년이 지났다. 고집 센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누구라도 아닌 것에서 마무리하는 고약한 성격이다. 우리를 찾지도 않는데 내가 왜?

 

딸과 나는 세상에 단둘이 고립된 섬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사생활을 노출하는 게 어쩌고저쩌고 말하는데...... 그래서 내가 어느 날 어디를 다녀왔다고 좀 알린다고 내 인생에 어떤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 정보를 안다고 누군가가 애를 먹거나 덕을 보는 것도 아닌데 그게 왜?

 

내가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해서 몇 달 쉬는 동안 더 많이 떠들고 놀았다. 이제 달리 신경 쓸 곳이 생겼으니 이 정도에서 적당히 접어야겠다. 

 

친구 만나서 통영 촌여자 상경기를 우스꽝스럽게 이야기하고 밥 먹고, 코로나 19 사태 이후 곧 망할 예정이라는 친구 카페에서 차 마시고 잘 놀다 왔는데 집에 돌아오니 기분이 가라앉는다.

 

 

 

빗길을 뚫고 나를 집 앞에 내려주고 딸 둘을 태우고 돌아가는 친구가 부럽다. 남편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가 부럽다....... 

 

이유가 뭐든 나는 아직도 그에 대한 결핍으로 마음 한쪽이 기울어있다. 이곳 밖에 마음을 꺼내놓을 곳이 없다는 건 결국 이런 속풀이 글로 겨우 균형잡고 버티는 거다. 

 

 

 

 

 

 

잘 놀고 왔는데도 울적한 저녁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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