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서 밖에 나가기 싫다는 딸이 집에서 잃어버린 시계를 결국 찾지 못해서 새 시계를 사러 오랜만에 함께 시내에 나갔다.
버스 내릴 때 승강장에 애매하게 발 딛다 걸려서 딸이 넘어져서 살짝 무릎이 까졌다. 초등학생 이후에 처음 넘어졌다며 오랜만에 넘어졌다고 아픈 무릎에 밴드를 붙이며 자기가 넘어져서 어린이가 된 기분이라며 웃는다.
마음에 드는 시계를 생각보다 싸게 잘 사서 기분 좋게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오기 귀찮다더니 자기 시계 산다고 냉큼 따라 나와서 기분 좋으니 걷기엔 먼 거리라고 생각하던 딸이 집까지 걸어가겠단다.
해저터널 근처까지 걸어왔을 때 딸이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배 고파서 그런 줄 알고 일찍 저녁을 먹기로 했다.
어릴 때 태어나서 24살에 이사하기 전까지 살던 집에서 저 너머 동네를 보며 살았다. 지금은 저 너머에서 이쪽은 보며 산다.
저 너머 동네에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거나 해저터널을 지나야 갈 수 있다.
구름을 보고 사진 찍던 내 뒷모습을 딸이 찍어서 보내줬다.
명절에도 문을 여는 우리 동네 레스토랑에 가서 딸이 새로 산 시계가 마음에 든다며 사진도 찍고
주문한 음식 중에 수프를 먹을 때까지는 괜찮은 줄 알았다. 샐러드를 먹다가 갑자기 머리가 계속 아프다며 딸이 눈물을 뚝뚝 흘린다. 겪어보지 못한 통증에 당황한 모양이다. 주메뉴가 나오기 전에 미리 포장해달라고 부탁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창밖을 보니 날씨가 참 좋다. 딸이 갑자기 머리가 계속 끔찍하게 아프다는 것은 급체인 것 같다. 생전 그렇게 아파본 적이 없는 딸이 상상도 못 한 통증에 긴장한 모습에 열은 나지 않느냐고 묻고 담담하게 카톡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거의 아파본 적이 없으니 딸은 그런 통증에 놀랐겠지만, 나는 많이 겪어본 일이어서 어떻게 처지 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서 차분하게 포장 음식점이 아닌 곳에서 음식 포장을 부탁하고, 두 번만 엎어지면 집인데 택시를 불러서 집에 갔다.
약을 찾아서 먹이고 누워서 쉬게 하니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낮에 동네 빵집에서 2+1 빙수에 눈이 멀어서 평소에 하나만 주문하던 빙수를 두 개나 주문해서 각각 하나씩 컵 빙수를 먹었다.
나는 목에 약간의 염증이 있어서 평소와는 달리 그 빙수를 아주 시원하게 잘 먹었는데, 딸은 빙수 한 컵 먹고 어쩐지 불편해했다. 그다음에 먹은 음식은 문제가 없었는데 버스에서 내리면서 넘어지는 바람에 온몸이 긴장해서 그때 체한 모양이다. 머리 아픈 게 가라앉고 나서 포장한 음식을 따뜻하게 데워서 먹고 웃으면서 혹시나 뇌종양이나 그런 병은 아닌지 겁먹었었다는 말했다.
건강하게 탈 없이 잘 자라서 급체에도 뇌종양을 상상할 정도이니 혹시나 세상에 나가 부딪히는 일 중에 상상도 못 한 일을 겪고 그렇게 겁먹거나 놀라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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