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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어쩌다 이렇게 됐어?

by 자 작 나 무 2020. 10. 11.

*

10대부터 20대까지 나를 알던 사람을 우연히 30대 이후에 마주치게 됐을 때 내가 들은 말 중에 기억에 남은 한 마디는  "어쩌다 이렇게 됐어?"였다.

 

두 가지 면에서 나는 그들의 기억과 기대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항상 날씬하게 말랐는데 퉁퉁하게 변한 외모에서 다들 깜짝 놀라서 그 말부터 뱉었고, 이 좁은 지역사회에서는 소문날 정도로 공부 잘했던 우등생이 그들이 보기엔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초라하고 평범한 모습으로 고향에 사는 것이 다른 한 가지 놀라운 일이었다.

 

가끔은 나도 거울 보고 놀랄 때가 있지만 이젠 지금이 내 모습에 더 익숙해져서 옛날 내 모습이 오히려 현실 같지 않다. 자연스럽게 붙은 살 외엔 거의 과식과 폭식으로 늘어난 것이니 제자리를 잡아야 '어쩌다 이렇게 됐니?'라는 말은 듣는 일이 줄어들겠지.

 

이곳에 남은 혹은 남겨진 이들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쟁에 뒤처졌거나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평가한다.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그들은 대부분 좁은 고향을 벗어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도 한때 그랬지만 결국 내 선택은 번잡하고 부침이 많은 곳은 피해서 살고 싶었다.

 

그들의 기대와 다른 모습으로 고향에서 마주친 내 모습에 놀라서 아무렇지도 않게 어쩌다 이렇게 됐냐는 안타까운 말에 나도 오랫동안 움츠려지고 마음 불편했다. 밖에 나가서 아는 사람 만나게 될까 봐 심장이 벌렁거려서 한때 낯선 거리만 찾아다녔다. 자신이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

일찍이 이곳이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 딸이 반드시 서울로 진학하겠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취업은 수도권으로 하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 계획이 있는 모양이다. 딸이 삶의 터전을 옮겨가면 내가 굳이 고향에 남을 이유는 없다.

 

빠르면 4년 이내에 주거지를 옮기게 될 것이고, 아름답지만 유배지 같았던 이곳에서의 삶을 정리하게 될 것이다. 나중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지만, 나처럼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쓸쓸하게 젊은 날을 보내지 않겠다는 딸의 확고한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때 이사할 준비를 해야겠지.

 

나처럼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이곳에 살지 않겠다는 말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여자가 되면서 객관적으로 내 인생을 비슷한 타인의 삶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말로 이해했다. 딸이 내 인생에 연민을 느낀다는 것을 그 말로 인해 알게 되었다.

 

딸이 그 캠퍼스에서 연애해서 짝이 생기면 이 계획이 어찌 변할지 알 수 없지만 눈 높은 딸에게 마땅한 연애 상대가 과연 거기서 만나 지려나? 

 

주말에 먹으려고 준비한 소고기 전골을 끓이려고 파 한 단과 양파 한 망을 산 것을 어찌 처리할까. 일주일 뒤에 집에 돌아오면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어둔 채소도 거의 숨이 죽어서 요리에 쓰기 곤란하다. 팽이버섯 남은 것과 채소를 다져 넣고 달걀말이를 해서 가는 길에 딸에게 건네주고 남은 것은 어쩔 수 없이 주말까지 살아남기를 바란다.

 

*

이곳과 어떻게 이별할지 걱정이었는데 이제 계획이 생겼다. 다시 돌아오지 못해도 아쉽지 않게 남도에 사는 동안 이곳에서 해야 할 것을 마저 해야겠다. 다음 주에 딸내미 만나면 우리 동네에 새로 알게 된 베트남 음식점에 가서 현지인이 만드는 그 집 음식을 맛봐야겠다.

 

9월에 가려다가 11월에 베트남으로 일하러 간다는 친구 만나러 조만간에 서울도 한번 다녀와야겠고, 계획대로 일이 잘되면 겨울방학 때 친구 만나러 간다는 핑계로 첫 베트남 여행을 할 것이다. 물론 코로나 19가 잠잠해진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계획이다. 멈췄던 많은 것 중 몇몇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생활이 일상화된 것처럼 변화한 일상에 맞춰 계획하고 한 가지씩 조심스럽게 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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