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흐르는 섬 <2020~2024>/<2020>

'엥가이'

by 자 작 나 무 2020. 10. 12.

해 지기 전에 걸으러 가려고

퇴근 시간 맞춰서 연구실을 나서는데

남 선생님께서 냉장고에 넣어둔 떡을

저녁으로 반 정도 먹으라고 하신다.

 

"저, 오늘부터 저녁 굶을 거예요."

두 분이 깔깔 웃으신다.

 

"엥가이......"

진주 토박이 오 선생님께서 나에게 직격탄을 날리신다.

'어지간하겠다.'는 뜻이다.

'어지간히 잘도 굶겠다.'는 말을 그렇게 하신다.

 

매일 화장할 때 쓰는

파운데이션 브러시를 집에 두고 와서

하나 사야겠다고 했더니 터미널 앞에 있다는

화장품 가게를 알려주셨다.

 

산책하고 거기까지 갔다 오니 허기져서

근처 농협마트에 들어가서 엄청나게 망설이다가 

오만가지 먹거리를 다 물리치고

옛날 과자 한 봉지만 샀다.

오도독오도독 부셔 먹을 것이 필요하다.

 

기숙사에 들렀다가 노트북 들고

연구실로 다시 오면서 얼큰한 컵라면 하나를

챙겨 왔지만 책상 위에 두고 쳐다만 봤다.

'엥가이.....'라는 말 끝에

두 분이서 나를 쳐다보시던 눈빛이며

그 묘한 뉘앙스는 내 식탐을 한 달만에 간파하신 거다.

 

아직 컵라면을 뜯지 않았다.

 

과연 오늘 밤을 잘 넘길 수 있을까......

'엥가이.....'

 

'흐르는 섬 <2020~2024> > <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저녁에.....  (0) 2020.10.14
10월 14일 산책길에.....  (0) 2020.10.14
귀환  (0) 2020.10.12
어쩌다 이렇게 됐어?  (0) 2020.10.11
괜찮아  (0) 2020.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