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기 전에 걸으러 가려고
퇴근 시간 맞춰서 연구실을 나서는데
남 선생님께서 냉장고에 넣어둔 떡을
저녁으로 반 정도 먹으라고 하신다.
"저, 오늘부터 저녁 굶을 거예요."
두 분이 깔깔 웃으신다.
"엥가이......"
진주 토박이 오 선생님께서 나에게 직격탄을 날리신다.
'어지간하겠다.'는 뜻이다.
'어지간히 잘도 굶겠다.'는 말을 그렇게 하신다.
매일 화장할 때 쓰는
파운데이션 브러시를 집에 두고 와서
하나 사야겠다고 했더니 터미널 앞에 있다는
화장품 가게를 알려주셨다.
산책하고 거기까지 갔다 오니 허기져서
근처 농협마트에 들어가서 엄청나게 망설이다가
오만가지 먹거리를 다 물리치고
옛날 과자 한 봉지만 샀다.
오도독오도독 부셔 먹을 것이 필요하다.
기숙사에 들렀다가 노트북 들고
연구실로 다시 오면서 얼큰한 컵라면 하나를
챙겨 왔지만 책상 위에 두고 쳐다만 봤다.
'엥가이.....'라는 말 끝에
두 분이서 나를 쳐다보시던 눈빛이며
그 묘한 뉘앙스는 내 식탐을 한 달만에 간파하신 거다.
아직 컵라면을 뜯지 않았다.
과연 오늘 밤을 잘 넘길 수 있을까......
'엥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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