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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그럼 그렇지.....

by 자 작 나 무 2021. 1. 16.

어제 밤늦게 온라인에서 정말 대적할 가치도 없는 인간의 공격적이고 일방적인 글에 대꾸하다가 내 감정이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스턴트커피를 진하게 한 잔 마셨을 때처럼 심장 부위가 쿡쿡 쑤시는 듯한 통증과 과하게 빨라지는 심장 박동에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 부분을 자극한 내 상처에 대해 생각해보니 그게 거짓말처럼 낫는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잊고 지내서 다행이었던 거다.

 

오늘은 오른쪽 머리와 오른쪽 눈이 아프다.

감정 제어가 힘들 때는 재빨리 단순하고 멍청한 일로 시간을 보내면서 주위를 환기하고 그 일에서 멀어지면 되는데 어제 그걸 깜박하고 몰입해서 오늘까지 몸이 아프다.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져야 하는데 어제 새벽에 갑자기 느낀 그 통증은 평소와는 달랐다.

 

사소한 일이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떤 문제의 원인과 사고의 시점을 찾지 못해서 깜깜한 상태로 더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기록한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상대와 상종하고 대답을 해주는 것이 오히려 잘못이다. 상종할 필요가 없는 무가치한 일에 애쓰지 마라.

 

혼자 지내다가 딸이랑 며칠 자고 나서 호르몬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나도 덩달아 호르몬 덩어리가 됐다.

 

지난주 금요일에 집에 돌아오니 물이 나오지 않았다. 날이 추워도 수돗물이 직수였다면 물이 얼지 않았을 텐데 옥상 물탱크에서 내려오는 부위가 얼어서 사흘 동안 밖에서 잤다. 이틀은 친구 집에서 하루는 집 근처 숙소에서 잤다.

 

방학하면서 기숙사에서 싸 온 짐은 거실에 그대로 팽개쳐진 상태로 물이 나오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주중에 비어있던 집은 냉기로 싸늘하다. 사흘을 밖에 떠돌다 돌아와서 쫄쫄 나오는 물을 받아서 쓰게 되니 불편함이 싫은지 제 남자 친구랑 아무 때나 통화하고 놀고 싶은데 내가 있어서 신경 쓰여서인지 적당한 핑곗거리가 생겨서 곧장 딸은 제 원룸으로 떠났다.

 

한 사람이라도 덜 불편하면 좋은 것이지만 나만 혼자 남겨두고 가서는 며칠째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 보내지 않는 것이 섭섭해서 어제, 결국 툴툴거렸다.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 섭섭함을 직설적으로 토로하고, 되지도 않게 시비 거는 사람을 지나치지 못해서 말로 다 받아쳤다. 결국 필요 없는 언쟁이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딸은 뒤늦게 생각해보니 자기가 너무한 것 같다고 태도를 바꿔서 문자를 보내왔다.

 

아무리 그래도 제 남친이랑 엄마를 너무 심하게 차별대우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바쁜 척 핑계를 댄 것이 저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

혼자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은 일찍이 내 성향과는 맞지 않아서 나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끈이 자식이었고, 생각한 대로 살게 됐다. 20년 남짓,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을 딸 덕분에 잘 버텼다. 

 

이제 그 끈을 놓고 보니 발이 공중에 붕 뜬 기분이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살려면 나를 붙들어 맬 뭔가가 있어야 한다. 혼자인 것이 때론 나를 더 좀 먹고 게으르고 멍청하게 만든다. 점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무기력함이 나를 삼킬 것만 같다.

 

10년만 젊었어도 아기를 한 명 더 낳아서 키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럴 때 도망치듯 멀리 떠나고 싶은데 갈 수도 없고...... 마지막 숨구멍처럼 틔어놓고 기다리던 7년이 작년이었는데 코로나 19로 모든 계획은 의미 없어졌다.

 

버려야 할 것이 많은데 하나도 버리지를 못하겠다.

 

*

내가 이 몸을 받아서 빌려 쓰면서 이 정도는 감당하고 덕을 보는 게 당연하지. 그렇지...... 그만 툴툴거리고 다독거려서 안정화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자. 아무도 내 편 들어줄 사람도 없는데 혼자 내 탓 하고 질책해봐야 몸만 더 아파.

 

*

살은 쪘으면서 작년과 똑같은 사이즈의 바지를 새로 사서 겨우 잠그고 일요일에 밖에 나갔다가 왼쪽 발목이 접혀서 울퉁불퉁한 보도에서 폭 고꾸라졌다. 손에 바리바리 들고 있던 짐을 보호하느라 애꿎은 내 오른쪽 무릎이 그 힘을 다 받아냈다.

 

새 바지는 입고 나온 지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찢어졌고 무릎엔 피멍이 들고 피가 흘렀다.

약 가지러 집에 올라가기엔 무릎도 아프고 다리도 아픈데 옆에 있던 딸이 걱정만 하고 꼼짝도 하지 않기에 그대로 그날 밖에서 자기로 한 숙소로 갔다. 찢어진 바지를 입고, 깨져서 까진 무릎에 피가 흐르거나 말거나. 

 

체크인하고 보니 경치가 좋아서 아픈 것도 일단 참고 사진 좀 찍고 까불다가 정신 차려보니 전신에 성한 데가 없을 만큼 욱신거린다. 이 나이에 길에서 한 번 잘못 넘어지면 남은 인생이 몹시 피곤해질 게 뻔한데 잠시 넋 놓고 멍하니 걷다가 전에도 넘어진 적 있는 그 지점에서 철퍼덕 고꾸라졌다가 바닥에서 굴렀다.

 

꽤 대형 참사였다. 이 덩치에 살짝 넘어져서 무릎으로 막아서 끝난 게 아니라 완력에 밀린 것처럼 무릎으로 땅을 퍽 치고 구르기까지 했으니 정말 대단한 액땜 행사였다.

 

그 난리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서 하룻밤 자고 나서 딸은 나를 이 허접한 집에 버려두고 유유히 떠났고, 나는 며칠째 입원한 환자처럼 누운 자리와 화장실만 왔다 갔다 했다. 

 

어제 내 안부가 궁금해서 챙기러 오신 분의 전화를 두통을 핑계로 피해 볼 참이었는데 문자를 제때 읽지 않으신 까닭에 강제 소환되어 나갔다 왔다. 덕분에 움직여보니 내 몸이 얼마나 삐거덕거리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럴 땐 그냥 아픈 척하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하지도 못 하는 일 걱정하면서 청승을 떨고 있다.

 

오늘은 환기하고 청소기 대충 밀었으니 설거지나 걸레질은 단념하고(별로 하고 싶지도 않지만) 밀린 잡담이나 쓴다. 

 

*

2018년 2월에도 이번처럼 물이 얼어서 나오지 않는 날이 있었다. 딸이 아침에 학교 가야 하는데 물이 나오지 않으니 화장실을 쓸 수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였고, 머리 감지 않으면 학교 못 가는 딸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비수기 가격으로 마리나 리조트에서 하룻밤 잤다.

 

통영에 살면서 거기 하룻밤 묵어보는 경험이 그런 일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텐데, 그곳에서 보는 일몰과 해돋이는 상당히 멋있었고, 그 덕분에 기분 좋았다. 이번에도 그때 생각하고 일요일에 마리나 리조트에서 하룻밤 잤다. 월요일 아침에 구름이 껴서 일출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따뜻한 곳에서 잘 자고 나와서 며칠 밖을 떠돌며 불안정했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돌아와서 구멍 난 바지를 세탁소에 맡겨서 짜깁기해서 입을 생각은 했지만 귀찮아서 손 놓고 있다가 엊그제 같은 쇼핑몰에서 같은 바지를 한 치수 큰 것으로 샀다. 오늘 바지를 받아보니 내가 왜 그렇게 멍청한 짓을 했나 싶다.

 

금세 살이 빠지지도 않을 텐데, 입을 옷도 없으면서 이왕에 옷 사면서 한 치수 큰 것으로 샀으면 큰 불편함 없이 입고 다녔을 텐데 그전에 샀던 바지와 같은 크기의 옷을 사서 옷이 작다고 내 몸이 분 것만 탓했다. 한 사이즈 큰 것 사니까 딱 맞고 좋은데. 멍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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