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고,
꽃 지고
새잎이 돋을 때마다 마음이 간지럽다.
일이 없을 때는 한껏 위축되어 몸이 아파서 조용히 지내다가 결국 그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쉬워서 밖으로 나다니곤 했다.
일을 해야 할 때, 할 수 있을 때는 겨우 버티는 몸을 부리는 데에 익숙하지 못해서 내내 전전긍긍하며 보낸다. 어떤 상태가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뭔가는 해야 할 때니까 그냥 버텨야 한다.
이날치 공연을 했다는데 올봄 시즌 공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가 지나쳐버렸다. 기침을 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내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도 발작적으로 기침이 나기도 하니까 언젠가 통영 국제음악당 공연 중에 기침이 나와서 그 기침을 멈출 수가 없어서 난감했던 그날처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까 봐 아예 포기해버렸다.
할 수 있는 것이 계속 줄어든다.
뇌도 오그라드는 것 같고, 속도 좁아지고, 생각도 쉽게 나풀거린다. 매일 출근한 뒤엔 뭘 잊어버렸는지 잊을까봐 노심초사하며 일에 쫓기듯 하루를 겨우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오는 걸음은 해방감에 가벼워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오로지 마스크를 벗고 생활하기 위해 되도록이면 빨리 집으로 돌아온다. 해야 할 일은 널렸지만 못 본 척하고, 우울감과 실랑이하기 일쑤다.
오늘은 어제 퇴근길에 사 온 잘 익은 토마토를 씻고 바질 페스토를 한 통 열었다. 토마토에 곁들이니 바질 페스토 향과 맛이 너무 좋아서 파스타를 삶았다. 새우 몇 마리를 녹이고, 버섯을 씻고, 마늘도 한 통 깠다.
토마토 한 접시를 먹은 뒤여서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 뚜껑 연 바질 페스토를 사흘 안에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파스타를 삶고 오일 파스타로 만든 다음, 바질 페스토를 넣고 비볐다.
토마토에 곁들여 먹은 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파스타 먹으면서 남아있던 와인을 한 잔 따라서 마시고 주말이라는 시간이 주는 넉넉함을 잠시 즐겼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일을 하지 않는 한에는 어디서 어떻게 죽어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게 썩 나쁘지는 않지만, 썩 좋지만도 않을 것 같다. 아무리 둘러봐도 딱히 손을 뻗을 데가 없다.
내가 여기 사는 한에는...... 아무도 만날 수가 없다. 조용히 살기엔 참 좋은 곳인데 어느날 고독사 하기 딱 좋은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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