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시작한 PC통신 게시판에 꽤 많은 글을 썼다. 그 당시에 고성군에 살아서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그곳에 나가도 오일장 서는 날 장 구경 하는 것 외엔 갈 데도 없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사이버 공간에 거의 일체화되었다. 종교 모임도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 여행도 통신 동호회를 통해서, 연애도 통신을 통해서. 꽤 많은 생활이 통신을 빼고는 생성되지 않을 정도로 내 일상은 시간대만 일치하면 어디에 사는 누구거나 상관없이 말을 건네고 말이 통하면 가까워졌다.
어떤 어둠이 엄습했던 시절 내가 알지 못하던 세계와 지혜를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그 시절에 게시판에 시를 올리던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가 사는 고장에 초대해서 만나러 갔다. 내가 궁금해하는 것을 만나면 알려주겠다고 해서 찾아갔다.
그의 모습은 애초에 상상해보지도 않았지만, 흡사 만화에 나오는 귀신 들린, 악마의 영혼이 빙의된 사람 같았다. 서늘하고 무섭고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오죽하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그런 글 쓰는 능력을 얻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괴한 느낌이 강했다.
그는 겉으론 친절했지만, 나중에 내가 그 게시판에 그를 만난 영광스러운(?) 시간을 멋진 후기로 올리지 않은 것을 핑계 삼아 나를 못살게 굴었다. 너무나 끔찍하게 글로 나를 난도질했다. 그는 내가 알고 싶어 하던 그 궁극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미끼로 나를 한 번 보려고 수작한 거였다.
그 당시 그 게시판에서 내 글이 가진 영향력을 알고 있었기에 내 미사여구가 필요했던 거다. 내 감정을 투사하지 않고 사람을 대해서 그때는 몰랐다. 나중에 내가 감정을 꺼내놓은 다음에야 그 사람의 음험한 느낌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었다. 다만 내가 알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이라는 정도에서 생각을 끊었기 망정이지 그때 내가 뭔가 바로 느끼고 표현했다면 어떤 앙갚음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나는 뭔가를 꺼놓는다. 여행지에서 카메라에 풍경을 담고 나중에 사진 보면서 그곳을 떠올리며 평가하거나 그때 발견하지 못한 것을 느끼듯, 내게 처음 보는 사람은 처음 보는 풍경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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