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는 열린 내 일기장이다. 일기장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언젠가처럼 누가 몰래 읽은 것이 속상해서 울지 않아도 되고, 사진도 보관할 수 있다. 아무 데서나 읽고 싶을 때 접속해서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가끔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때 지난 일기를 읽는다.
사춘기 때 내 일기장을 몰래 본 엄마가 보는 앞에서 그 많은 일기를 갈기갈기 찢어서 마당에서 불을 지펴서 태웠다.
대학 4학년 때부터 대학원 다닐 때 나를 쫓아다니던 남자가 하숙방에 몰래 들어와서 내 일기장 몇 권을 다 들고 가서 읽은 것이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하숙집 월식 생으로 들어와서 매일 나를 관찰했고, 하숙집 할머니께 거짓말하고 내 방 열쇠를 얻어서 내 방 곳곳을 다 뒤졌다.
옷장 안에 넣어둔 두꺼운 일기를 다 가져가서 마르고 닳도록 읽고 나를 분석했다. 내 생각의 일부, 감정의 일부, 기억의 일부인데 그것으로 사람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정복하고자 하는 욕구는 끔찍했다. 나를 갈가리 찢어놨다.
그때의 나는 감정 표현을 하거나 내 생각을 말하는 일이 없으니 그가 나를 알 방법이 없어서 한 짓이라지만 그 당시 내 성격에 누군가 내가 드러내지 않은 뭔가를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에 나는 생각을 과감하게 바꿨다. 몇 해 동안 굳었던 손을 풀고 생각한 대로 공개적인 곳에 아무렇게나 생각을 내질렀다. 그렇다고 큰일이 생기거나 내 인생이 바뀌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 정착한 것이 블로그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나는 내 일기장 같은 블로그에 잡다한 내 인생의 감정 나부랭이와 흘러가면 잊힐 생각을 끊임없이 성긴 그물로 잡아서 올려놓을 거다.
내 인생은 거창하지도 않고, 대단할 것 하나 없는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다.
요즘 내 생활은 다른 각도로 바라보니 해묵은 한을 풀고 있는 것 같다. 그 괘도를 지나고 있다. 대학 4년 대학원 2년 반을 다니면서 공부했는데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애 낳고 반 거지처럼 살면서 그게 조금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못한 것을 다하지는 못해도 몇 해는 한풀이하듯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으니 큰 그림을 보니 모두 내가 원한 대로 사는 거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서 가야 할 길을 지나고 있는 거다. 감사하다.
현모양처가 되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교사가 되어 생각을 바꾸고 인생을 바꿀 한 시간을 누군가에게 건네주고 싶었고, 작가가 되어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내 어릴 때 꿈은 그렇게 세 가지였다. 두 가지를 이뤘고, 한 가지는 나이 더 들어서 마저 이뤄질지 오래 살아봐야 할 일이다.
20대에 등단할 기회도 여러 번 있었지만, 내가 갈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이상해서 들어가지 않았다. 나에게 계약을 제의한 출판사 세 곳을 건너뛰고 전속작가로 계약하자던 어떤 출판사와 계약을 한 적도 있다. 능력도 부족한 내게 찾아온 그때가 때가 아니어서 모두 접었지만, 생각한 대로 비슷하게 살아가게 된다.
키다리 아저씨를 만나고 싶었던 어릴 적 바람대로 한때 내 인생의 중요한 때에 키다리 아저씨가 스치고 지나갔고, 우매한 내가 어딘가에서 맴돌고 있을 때 정신이 확 들만한 충격을 주고 간 인연도 있었다.
혼자는 살아남기 어려운 내 속성을 보완하기 위해 나만 찾고 매달리는 딸 하나 낳아서 덕분에 가지런하게 잘 살아남았다.
이제 또 다른 삶을 설계해야 하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없다. 깊이 생각하고 진중하게 결정해야겠다. 생각한 대로 살아지니까.
*
오랜만에 와인 한 잔 마셨다.
어떤 사람은 참 어렵게, 열심히 산다. 내가 하지 못 하는 일을 그들은 한다. 내가 꼭 그렇게 열심히 살고 그런 일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지. 별로 힘은 안 되겠지만 항상 응원하고, 필요할 땐 편이 되어주고 싶고, 늘 잘 되길 바라고, 건강하기를 바란다.
뭐든 해주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지금은.
그 사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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