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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by 자 작 나 무 2022. 2. 11.

그런 게 없어서 모질지도 독하지도 못해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남에게 부리지 못하는 깡을 자신에겐 부리는 나를 보고 어이없어서 웃었다. 이제 그런 짓은 하지 말고 좀 대충 살아야지.

 

며칠 전에 제주에 사는 친구와 통화하면서 얼떨결에 그런 말을 했다.

"이 나이에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게 뭔지 알아? 호감 가진 이성에게 이유도 모르고 차이는 거야."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했다. 하룻밤 꼬박 새우고 출근했다가 퇴근하면서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자동으로 움직여지는 걸음 따라 운동장을 가로질러 지나는 길에 내가 며칠 조용하니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한다고 전화한 친구에게 대뜸 그런 말을 했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뭔가 다른 일을 벌여서 나를 힘들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 일을 하지 않고 몰아뒀다가 도무지 다른 생각이라곤 하나도 할 수 없도록 몰아세워서 일해야 하게 만드는 것, 이번에 내가 저지른 일이 그런 거라고 설명했다.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인데 얼떨결에 술술 말이 나오는 거 보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이제 난 그런 고민이나 하는 한량인 거다. 정말 드물게 조금 호감을 느꼈던 이성과 한 번 만나고 나면 두 번 만날 기회는 아예 사라져 버린다. 인연이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접고 없던 일로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자꾸 생각난다.

 

옛날 옛적에 국민학교 다닐 때 내가 좋아하던 남학생에게도 말 한 번 제대로 붙여보지 못하고 내내 먼발치에서 구경만 했다. 특별히 그런 학습이 될 경험도 없었는데 그런 문제만은 소심하다. 내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 상대가 내게 호감을 표현하면 얼마나 무감각하게 대하는지 나 자신을 알기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상대가 되면 불편하겠다는 생각에 감정을 강요하는 행위처럼 느껴질까 봐 말 한마디 다시 걸지도 못한다.

 

오늘은 제주에 사는 친구가 올해는 눈 낮추고 남자를 만나서 사귀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더 늙기 전에 좋은 사람 만나라고 정말 따뜻하게 말해줘서 그 말이 참 고마웠다.

 

*

긴장 풀리니 슬슬 이상하다. 푹 쉬어야 하는데 내 몸을 너무 혹사했더니 슬슬 대가를 치르라고 신호를 보낸다. 오늘은 일찍 잠들고 싶은데...... 잠을 잘 못 잔다. 그동안 잘 버텨준 내 몸뚱이야 고맙다. 이제 좀 쉬자.

 

이젠 그런 이상한 깡 안 부려도 되게 살살하고 살자. 제때 해야 할 일은 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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