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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확장형 행거

by 자 작 나 무 2022. 3. 20.

며칠 전에 도착한 택배 상자가 너무 무거워서 원룸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무거운 택배 상자를 뜯지도 않고 내내 현관에 세워뒀다가 어제 오후에야 뜯어서 조립했다. 조립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긴 원피스와 긴 외투는 맞은편 벽장에 걸고, 옷걸이가 부족해서 걸지 못한 옷은 아직 상자에 가득하다. 

 

2020년 가을에 어느 학교 기숙사에 살면서 장만한 행거를 집에 두고 온 터라 다시 행거를 사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여기 와서 아주 좁은 벽장에 들고 온 짐을 다 넣는 게 더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일인 것 같았다.

 

사진 찍느라고 블라인드를 올리고, 환기하고 사진 찍어놓고 점검해보니 어떻게 뭘 더 치우고 정리해야 할지 눈에 보인다. 사진이 객관적인 시선을 느끼게 해주는 거다. 내 눈으로 보는 것과 달리 카메라에 담긴 뭔가를 다시 보는 것은 검열과 점검에 도움이 된다.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을 찍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해서 한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나이 드는 것은 당연하고, 내 모습 사진도 가끔 찍어서 남겨야겠다.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얼굴이 어떻거나 뭐 어때?

 

 

*

매트리스에 세트로 온 매트리스 껍데기를 벗겨서 세탁기에 넣고, 다음 주에 혹시라도 딸이 여기에 놀러 오면 재울 때 쓸 베개 껍데기도 세탁기에 넣었다. 통돌이만 쓰다가 드럼 세탁기를 사용하게 되니까 불편한 점은 중간에 발견한 세탁물을 뒤늦게 세탁기에 넣을 수 없다는 점이다.

 

 

*

어제 밤늦게 까르보 불닭 볶음면을 끓여먹었다. 1+1로 파는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은 것은 내 취향이 아니라 딸이 좋아하는 것이어서 함께 먹고 싶은 바람에 넣은 거였다. 

 

혼자 고립된 방에서 사는 것이 처음이어서 오히려 신선한 즐거움일 수 있는 딸의 격리 생활을 내가 걱정할 필요 없다는 사실을 어제 확인했다. 내 걱정이나 하자.

 

여기선 맛볼 수 없는 맛있는 동네 빵집에서 종류대로 담은 빵도 배달시켜줬고, 평소엔 먹지 않는 죽을 먹겠다기에 취향대로 주문해서 보냈다. 죽을 먹겠다는 걸 보니 목이 많이 아픈 모양이다. 그래도 꿋꿋하게 별로 안 아프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다. 그래, 안다. 너무 즐거움만 쫓다가 걸려서 미안한 거겠지.

 

전엔 코로나 걸릴까 봐 무섭다며 나랑 함께 떠나는 여행을 번번이 마다한 네가 그렇게 겁 없이 밖에서 저녁 약속, 점심 약속, 술 약속까지 끝없이 잡았다는 거 다 안다. 나도 이제 내 걱정이나 하며 살래. 나 너무 허술하고 변변찮아서 어찌 살지 걱정이거든.

 

 

*

집에 가고 싶다.

우리 동네 빵집에서 파는 맛있는 빵도 먹고 싶고..... 우리 동네 바다 보고 싶다. 이상하게 여긴 출근할 때 외엔 밖에 나가고 싶지 않다. 우울증, 대인기피증.....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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