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딸의 자가격리가 끝난다. 혼자 집에 들어가서 일주일 앓았을 딸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내가 사는 원룸으로 딸을 불러들일 수는 없었다. 주변에서 누군가 확진되었다고 할 때마다 신속항원검사를 한다.
어제 옆자리 분이 확진되었다고 했고, 최근에 같이 커피를 마신 분 아들의 친구가 확진되었다고 해서 오늘 아침에도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어제 아침 발열 체크 당번이어서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여 서 있다가 일하다 보니 확진 소식이 더 신경 쓰였다.
그래서 어제는 기침도 하고 머리도 아팠다. 신속항원검사 결과가 음성이어서 그냥 출근했다.
매일 아침 깰 때마다 확인한다. 오늘은 무슨 요일인지.
매일 출근하는 곳이 다르다. 매일매일. 다른 곳에 출근한다. 연이어 이틀 출근하지 않고 번갈아 가며 출근하다 보니 혹시나 실수하지 않을까 더 신경 써야 해서 피곤하다.
여기에도 속하고 저기에도 속한다고 생각하기엔 현실은 여기에도 속하지 않고, 저기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일은 여기에서도 해야 하고, 저기에서도 해야 하고, 관련 업무도 이곳저곳 번갈아 가며 해야 하는데 연속성 없이 퐁당퐁당 출근하는 게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하루씩 번갈아가며 다른 얼굴을 붙이고 있는 묘한 기분이다.
*
그 상황에서 오늘 어떤 학생과 감정적으로 부딪혔다. 확진되었다가 나았으니 자기는 마스크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던 첫 시간의 만남이 기억에 오래 남았고, 나는 삐딱하고 불편한 눈으로 그 학생이 마스크를 벗을 때마다 살짝 신경질적으로 쳐다봤다.
어느 날은 대놓고 이기적이라고 잔소리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니 아무 말도 안 하는데도 재갈 물린 것도 아니고 다들 마스크 쓰고 앉아서 견디는데 미안하고, 뭐라고 해봐야 반항과 삐딱한 소리만 하니까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
순간 분노 조절이 안 돼서 감정 조절하러 교실 밖으로 나가서 몇 걸음 걸었다. 빨리 생각을 바꾸고 금세 돌아와서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남은 수업을 진행했다.
나중에 수업 마치고 이야기 좀 하자고 중간에 매듭짓고 살짝 시선을 피하며 계속 딴청 피우는 그 시간을 견뎠다.
한 시간쯤 지난 뒤에 그 학생을 찾아갔다. 그 학생이 뭐라고 하거나 마스크와 관련하여 내가 한 말이 불편하게 들렸다면 내 감정이 들어가서 그런 것이라고 다음엔 다른 억양으로 말하겠다고 내 잘못 아닌 것 같은 잘못부터 말했다. 그러니 너는 내 수업에 오면 조금 신경 써달라고 부탁했다.
교실 뒤편에 벌렁 드러누워서 마스크 벗고 놀던 그 학생이 나와 대화하러 나올 때는 마스크를 끼고 나왔고, 정중한 자세로 내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래서 조곤조곤 그 상황의 문제점을 학생이 느꼈을 감정적 불편함에 초점을 맞춰서 풀어서 말했다. 그랬더니 눈빛이 사그라든다. 감정적인 순간을 피해서 그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이성적으로 말하는 게 상황을 해결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었다.
오늘 그 일을 그렇게 바로잡지 않고 퇴근했더라면 내내 불편했을 것이다. 그냥 학생이 잘못했으니 너부터 사과하라고 뭘 잘못했냐고 따지고 묻는 것은 뻔한 결과로 이어질 것 같아서 작전을 바꿨다. 그 학생이 그렇게 눈을 치켜뜨고 큰소리친 이유는 자기가 잘못한 줄은 알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다는 표현으로 읽었다. 그걸 뻔히 알면서 나무라기만 한다면 소통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주 건조하게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적당히 차가운 온도로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뉘앙스로 말했다. 덕분에 내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오늘 나의 변화였다. 바로 잡는 방법은 사소하더라도 내 문제부터 살피는 것.
내 입장에서 결코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아도 타인의 입장에서 이기적인 눈을 치켜뜨고 보면 불편할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니까, 그 지점을 발견하는 거다. 그리고 조율하는 거지. 이런 것에 능하지 못 해서 참 힘들게 살았다.
*
그런데 청와대 이전 뉴스에는 분노 조절, 감정 조절이 안 된다. 왕 짜증 나서 오늘도 엄청나게 매운 라면을 끓여서 불타는 듯 눈물 쏙 빠지는 통증을 혀에 가중하며 자학했다.
어이없음을 넘어서 이제는 분하다 분하다 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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