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달린다.
잠들기도 어렵고 잠든 지 한 시간 간격으로 새벽에 끊임없이 깨는 이 묘한 시달림 때문에 불균형, 부조화의 뒤틀림을 느낀다. 자발적으로 기분 좋게 몸을 혹사할 방법은 많이 걷는 것 밖에 없겠다.
새벽에 반복해서 깨다가 새벽 5시 조금 넘은 시각에 또 깼다. 조금 더 자고 아침 9시 반쯤 출발하는 경주행 버스를 탈 계획이었는데, 일찍 깨서 첫차로 예매 시간을 변경하고 길을 나섰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차가 그리 밀릴 일 없어서 도착 예정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삼천포에서 진주 찍고, 환승하여 통영 갔다가 아침 일찍 경주 가면서 집에서 들고 나온 캐리어를 끌고 온 바람에 짐 보관할 곳을 찾아야 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있는 물품보관함에 캐리어를 넣고 돌아다녔다.
양동마을 가는 버스 시간을 찾아보니 9시 반에 도착했는데 그 동네 가는 버스를 타려니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다음엔 꼭 시티투어 버스 예약하고 그 프로그램대로 움직여야겠다. 대중교통으로 양동마을 다녀오기엔 무리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휴대폰 충전하고, 어딜 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달리 떠오르는 곳이 없다. 그냥 집 밖에 나온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걸음 닿는 대로 걷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걷다 보면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황리단길이 있다. 딸이랑 같이 왔으면 엄청 신났을 텐데.....
이 길을 끝까지 혼자 걸을 이유도 없고 오전에도 한여름 날씨같이 더워서 조금 걷다 보니 돌아서고 싶었다.
엉뚱하게 잠옷이 눈에 띄어서 사진 찍어서 딸에게 보내서 고르게 하고 노란색 잠옷을 한 벌 샀다. 돌아가면서 잠옷 선물을 준다는 핑계로 딸을 만날 수 있다. ㅋㅋ
황남빵 10개 주문했더니 낱개 포장된 것이 없어서 구워서 바로 준다고 기다리란다. 뜨끈뜨끈한 황남빵 10개를 받아서 가게 앞에서 다섯 개를 한 번에 먹어치웠다.
먹고 나니 식욕이 넘친다. 시원한 밀면 한 그릇 먹기 딱 좋은 날씨다.
황남빵 본점 근처에 고향밀면집에 지난가을에도 혼자 와서 밀면 한 그릇 먹고 이번엔 꼭 온 밀면 먹어야지 생각했는데 날이 더워서 시원한 게 먹고 싶었다. 빵을 먹지 않았더라면 양이 적어서 아쉬웠겠다.
가격도 천 원 올라서 이젠 가성비가 그리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그저 그런...... 그래도 이만하면 다음에 또 혼자 밥 먹기 애매할 때 가게 될지도 모른다. 국물까지 남김없이 마시고 배가 빵빵해져서 일어섰다.
아름답다. 올봄 경주 여행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가족끼리 어울려서 소풍 나온 사람들의 밝은 표정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화사한 날씨만큼 화사한 표정이 웃음소리로 읽혔다.
연 날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우고 가르쳐주는 가족
1년 만에 만나는 연두빛 새잎만큼 아름다운 가족, 어울림
어느 건물 그늘 아래, 나무 그늘 아래 여러 세대가 어우러져 점심 도시락을 먹는다. 소풍, 운동회 때 구경 온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어울려서 김밥 도시락 먹던 풍경 같아서 한참 바라봤다.
나의 결핍과 그리움의 원천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어울림, 화합, 가족...... 그런 것이라고 내 눈은 끊임없이 그런 것만 발견하고 거기에서 멈춰 선다.
네댓 시간 땡볕에서 걸었더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다리도 아프고 지친다. 느지막이 왔으면 야경도 보고 자고 갔을 텐데 주말에 경주 시내 숙박비는 최강 바가지다. 아침 일찍 가서 좀 놀다 돌아오는 게 적당하다.
진주로 가는 버스에서 잠들었다가 깨니 금세 도착했다. 진주에서 경주 가는 첫차는 10시쯤이고, 통영에선 7시 10분에 있으니 터미널을 다중으로 이용해서 하루 코스로 여행이 가능했던 거다.
경주처럼 시내만 걸어다녀도 볼거리가 있는 곳으로 가끔 주말여행을 가도 좋겠다. 어제 날씨 같으면 이제 땀 많이 흘리지 않고 걷는 여행은 찬바람 나기 전엔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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