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불쌍해 보이게 생일은 혼자 보내고 싶지 않다고 미리 신신당부했다. 덕분에 이번 주말은 딸과 함께 보내게 됐다.
삼천포대교 앞 카페에서 오후에 잠시 시간을 보냈다. 해상 케이블카도 타고 저 너머에도 다녀오기엔 애매한 시간이었다.
체육복 바지 입고 나타난 딸에게 내 옷과 내 구두, 가방까지 내주고 같이 나왔는데 풍경이 마음에 드는지 인스타용 사진 찍기 좋다며 사진을 찍어달란다.
카페 옥상에 셀카용 거울이 있어서 오늘 기념사진을 찍었다.
맛있는 점심 사 주고 전망 좋은 카페에서 예쁘게 사진 찍어주고 기분 풀어준 뒤에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 내가 요즘 혼자 산책하러 다니는 산책길 같이 걷기
아직도 대낮부터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이 가게 안쪽에 있는, 옛날 옛적에 보았던 선술집 같은 ○○상회
너 딱 걸렸어~! 토끼가 꽃을 뜯어먹을까봐 철조망을 해놨는데 이 녀석이 넘어 들어와서 예쁜 꽃만 똑똑 다 따먹는다.
저수지까지 돌아서 내려오는 길에 들어섰을 때 산책길이 너무 멀다고 툴툴거렸다. 어떻게 비위를 더 잘 맞출지 내내 고민했다. 흔들의자까지 가서 앉혀서 그네 타기 놀이하기 전에 예쁘게 사진도 찍어주고.......
너도 귀여운 토끼 같다고 말해주고 조금만 쉬었다가 또 토끼 보러 가자고 살살 구슬렸다. ㅎㅎ
기분 좋아서 간이 부은 딸이 어린이 놀이터에 뛰어들고야 만다.
그리곤 작은 개구리와 주파수 맞추기 놀이를 한다.
산책길에서 돌아온 뒤에 저녁을 먹고는 딸이 미리 주문해서 가져온 생일 케이크를 후식으로 먹었다. 진짜 생일은 이틀 남았지만 그래도 오늘 기분 좋게 이것을 찾아서 시외버스 타고 들고 온 딸의 성의를 생각해서 저녁 많이 먹고 배부른데도 맛있게 먹었다.
먹고 나면 사라질 케이크니까 사진이라도 여러 장 남겨놓는다.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어서 눈물 나게 고맙고 행복하다. 행복한 시간은 좀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
딸이 바빠서 미리 당겨서 내 생일을 챙겼다. 그냥 넘어가기엔 우리에겐 딱히 기념일도 없고 서로의 생일이 최고의 기념일이다.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르겠지만 앞으론 뻔뻔하게 꼭 생일 챙겨달라고 해야겠다. ㅋㅋ
엄마로서 역할이라고는 이제 할만큼 했는지 용돈 주는 것 외엔 거의 없어져버린 것 같고, 점점 존재감 없이 희미해지는 나를 다시 살게 하는 한 해의 기점인 날. 한 살 더 먹고 나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딸에게 말했다.
오래 묵은 것이 남아있는 것 같으니 그것을 풀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 중 한 가지였다. 엉뚱하지만 이유 있는 새 각오. 뜻하는 바가 있으면 그 길로 인생이 이어지는 것이 맞다면 나는 올해 그 길로 들어서게 되겠지. 원인에 부합하는 적절한 시기가 오면 길이 열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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