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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딸이 첫 시승하고 한 말
1. 와~ 이제 쇼핑하러 갈 수 있겠네.(그간 시외버스 타고도 잘 다녔는데 앞으론 더 잘 다니겠다.)
2. 유럽에 해바라기 밭 옆으로 난 길, 넓은 밀밭 옆으로 난 길..... 또 어디더라. 거기 막 달리고 싶어.
지금 하던 거 다 때려치우고 당장 가서 거기 달렸으면 좋겠어.
오늘 마지막 시험 한 과목 남았는데 그간 나름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겠지. 어쨌든 딸은 어릴 때 일찍 바깥에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여행 다닌 바람에 가고 싶은 곳이 참 자유분방하다. 어쩌다 한 번 데리고 간 파리 라발레 아웃렛도 들먹인다. 그때 참 즐거웠던 모양이다.
나는 딸이 즐거워할 일은 마다하지 않고 하게 해준다. 나쁜 일만 아니면.
난 어릴 때 뭘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유년 시절 내 세상은 대체로 잿빛이었다. 밝고 화사하고 유쾌한 빛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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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어떤 분이 '조르바'를 읽고 카페 게시판에 쓴 독후감을 읽었다. 그분이 보는 세상은 온통 어둡고 칙칙하다. 희망 없는 쓸쓸함이 저변에 깔려있어서 그분이 쓴 글을 읽을 때마다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세상이 비록 지옥이라고 할지라도 지옥에도 가끔 희미하게 볕이 드는 순간도 있고, 비가 와서 질퍽해지는 땅에 한 켤레뿐인 신이 푹푹 빠져서 망가져도 평소와는 다른 촉감을 느끼는 것에 신경을 모으면 색다른 기분으로 순간이 바뀌기도 한다.
어차피 내 힘으로 이 지옥 전체를 지옥이 아닌 것으로 바꿀 수 없다면 시선을 바꾸면 견딜만하다. 차마 그런 댓글은 달 수가 없어서 혼자 생각하고 말았다. 문맥상 알 수 있는 말에 한자를 꼭 붙이는 습관에 살짝 주춤해진 다음에 묘한 편견과 선입견이 생겨서 간단하게 인사를 남길 수 있는 글에도 자연스럽게 한마디 남기는 일조차 없어졌다.
그냥 단순한 습관일 수 있는데 내 눈에는 불편하고 삐딱하게 읽어졌다. 덕분에 한 가지 알게 됐다. 내가 사람을 읽는 코드도 편견일 수 있음을. '~습니다.'를 아직도 '~읍니다'로 쓰는 사람과 글도 말도 섞지 않는다. 분명 내 또래인데도 그런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슬쩍 피하고 싶다.
'맛점 하세요.'라고 말 붙이면 그날로 손절한다. 상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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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하려던 일을 오늘 해치웠다. 주말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내일 하루 잡아서 다녀오는 게 영 신경쓰였다. 퇴근하고 혼자 구불구불한 국도를 타고 통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엔 고속도로를 탔다.
단골 김밥집, 단골 빵집에 들러서 그간 인사도 없이 가지 못한 이유를 말씀드리고 먹거리를 사고 인사도 나눴다. 집 근처에 있는 분식집, 빵집 사장님들이 나를 기억해주시는 게 참 고마웠다. 시외버스 두 번 환승하고 시내버스까지 버스 세 번 갈아타기 힘들어서 차를 샀다고 말씀드렸더니 분식집 아주머니께서 나를 배웅해주시며 길에 나와서 내가 차를 잘 빼서 나가는지 끝까지 보고 있다가 손도 흔들어주셨다.
월세 두 군데 다 내려면 아깝겠다, 그래도 차로 그 먼길 출퇴근하는 것보다 그게 낫다고 내 편에서 잘했다고 말해주셔서 어쩐지 고마웠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며 내 삶이 한순간에 바뀔 수도 있다고 따뜻한 말로 다독여주셨다.
단골 빵집에 마지막 남은 소금빵 한 개와 딸이 좋아하는 빵 몇 가지를 담아서 딸내미한테 갖다주고 돌아왔다. 사흘만에 300킬로나 주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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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마감인 일만 마무리했더라면 내일도 함양 상림쯤은 가서 놀다 올 수 있을 텐데, 함양 간 김에 한옥마을에도 가고. 데리고 다니고 싶은 곳이 많았는데......
오늘은 일주일 동안 밀린 피로감에 사흘 내리 하도 차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상당히 지쳤다.
불과 얼마 전 어두운 고속도로 위에선 세상이 끝나는 곳까지 그대로 달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