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맛집도 아니었다.
결국 잠시 들러서 인사라도 나눌 수 있는 익숙한 가게에 찾아간 것이 전부였다.
다 닳아서 새로 가져오려고 했던 세숫비누며 이것저것 집에 쟁여놓았던 물건 챙기는 것은 잊었고, 정작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만나고 싶었지만 그 시각에 만날 수 있는 사람, 편하게 잠시 인사할 사람도 없었던 거다. 혹시 주말에 가면 만나기로 했던 친구는 이미 퇴근하고 집에 돌아갔으니 불러낼 수 없는 사람이다. 가정이 있는 친구는 다 그렇다. 결국 고향에 가도 주말엔 만날 사람 하나 없는 거다.
나처럼 챙길 사람도 챙겨줄 사람도 없는 이나 금요일 저녁에 혼자 마음까지 떠도는 거다.
고향을 떠날 때가 되었다. 이제 떠나도 좋다.
*
냉장고에 든 다양한 맥주 중에 한 개라도 들고 올 걸 그랬다. 이렇게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데도 온갖 욕망이 뚫고 나온다.
오랜만에 간 내 집은 박제된 공간이었다. 우리가 이사하고 어언 17년이나 살았던 그 집은 일시정지 상태로 꽤 오래 묵은 퀴퀴한 공기로 밀봉되고 삶의 궤적이 수없이 보이지 않는 흔적으로 박제되어 있었다.
거미줄 같은 시간의 화살표 사이로 엉금엉금 걷다가 하나하나 오래된 문화유산이라도 되는 듯 자리한 물건을 슬슬 눈으로 훑다가 돌아섰다. 나는 마치 평행 우주로 이사한 것 같다.
몹시 피곤한데 외롭고 갈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