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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에 넘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욕심이다. 과분한 것을 받지도 말 것이며, 하려고 나서지도 말아야 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비슷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내가 사랑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을 내 삶에 끌어들이거나 끌어안으려고 하는 것도 다를 바 없다.
너무 과한 사람을 탐내는 것도, 내게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계산하게 되는 사람을 특별한 감정 없이 끌어안으려고 선심 쓰듯 마음을 내는 것도 중용에서 벗어나는 위선에 속한다. 이미 한 번의 교훈으로 충분하다. 어떤 상대 거나 계산도 안 되는 감정이 몰아치는 게 아니라면 굳이 애쓰지 않을 거다.
이 나이에 그런 상대를 만나는 것조차 희귀한 일일 테니까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무조건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질 참이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로 어처구니없는 감정에 휩쓸리게 되는 순간. 그 순간에 함께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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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한 번 찾아갔던 김밥집에 나서려니 어쩐지 살짝 에너지가 부족했다. 토요일에 시간을 내서 찾아갈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동네 근처에 다른 곳을 하나 더 찾아서 겸사겸사 찾아가 보기로 했다.
멸치육수로 맛을 내는 잔치국수를 한 그릇 먹으러 다녀왔다. 스무 살 때부터 다니던 '제일 유부'에서 여전히 3,500원에 파는 물국수가 아직은 가격 대비 최고의 국수다. 오천 원짜리 생면 국수 한 그릇. 나쁘지는 않았는데 엄청난 호감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작년 6월에 건강검진받으러 나선 길에 딸과 함께 갔던 빙수집 '올디스' 카페에도 찾아갔다. 오천 원에 부드럽게 삶은 팥을 듬뿍 얹은 우유빙수를 내준다. 얼음 갈아서 해 먹던 그런 빙수보다는 우유 빙수가 조금 더 입에 익숙해져서 우유 빙수가 좋다. 거기에 삶은 팥을 얹어도 좋고 과일을 얹어줘도 좋다.
딸은 계피향이 나서 싫다고 하던 그 빙수를 혼자 한 그릇 다 먹었다. 쉴 새 없이 자리가 채워지고 끊임없이 포장 손님이 들어오던 올디스 빙수가 가끔 생각난다. 단순하고 담백한 팥빙수가 흔하지 않아서인지 꼭 그것만 넣은 그 빙수가 어쩐지 깔끔하고 좋다.
떡을 비롯하여 다른 고명이 없어서 국수 한 그릇 먹은 뒤에도 가뿐하게 빙수 한 그릇 먹고 커피까지 마실 수 있었다. 빙수 세 숟갈에 커피 한 모금씩. 찬 것만 먹고 배탈 날까 봐 속을 데워가면서 먹었다.
사천읍에 가서 국수 먹고, 진주 시내 가서 빙수 먹고 삼천포로 돌아가는 길에 '어묵 나라'에 들러서 김밥을 포장했다. 엊그제 직장 동료와 먹었을 때와 맛이 다르게 느껴졌다. 역시 내 입엔 여전히 '제일 유부'의 유부 김밥이 최고다. 그 맛을 따라갈 김밥집이 아직 없다.
어묵 나라 김밥은 혼자 먹어도 맛있어서 한 줄 더 먹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맛있으니까 딸에게 같이 가자고 호들갑 떨만한 맛집을 발견하지 못해서 아쉽다. 내가 맛집을 찾는 이유는 딸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