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없어서 그동안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다니던 곳에 다시 가보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일종의 한(?)이 있었다. 딸이 그래서 토해내는 목록은 기억했다가 빠짐없이 확인해서 시간 맞을 때 같이 가기로 했다.
그중에 금요일 퇴근하고 가기로 한 집은 간장 오리불고기를 잘하는 음식점이다. 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그 집은 택시 타고 가기엔 다소 멀어서 또 가고 싶어도 같이 갈 친구가 섭외되지 않으면 가기 곤란해서 딸에겐 아쉬움이 남았던 모양이다.
시에서 받은 재난지원금을 날짜가 넘어가기 전에 써야 하는데 하필 올해는 둘 다 통영을 떠나서 생활하게 되어서 그 돈을 제때 쓰기 위해서 만나서 가끔 통영에 가서 뭔가 먹기로 했다. 그래서 둘이 통영에 가다가 뜬금없이 고성에 있는 샤부샤부 뷔페 이야기가 나왔다.
이곳이야말로 차 없이는 갈 수 없는 곳인데 내가 마침 어제 저녁에 가고 싶어서 찾아보던 곳이기도 하다. 딸이 샤부샤부를 좋아하지 않아서 가자고 말은 못 하고 그 사이에 가게 문을 닫지는 않았는지 궁금해서 최근 정보를 찾아봤다.
그런데 희한하게 딸이 그 집에 가자는 말을 꺼내는 거다. 통영으로 달리던 중에 목적지를 바꿨다.
어제처럼 폭우가 내리고 뇌우가 치고 습하고 이상한 날씨에 싱싱한 해물을 우려낸 따뜻한 국물을 맛본다는 것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샐러드 바에서 샐러드를 종류대서 골라와서 먹고, 샤부샤부를 채소 듬뿍 넣어서 먹은 뒤에 칼국수 면도 조금 넣어서 맛있게 먹었다. 만족감에 들뜬 딸과 함께 비어있는 우리 집에 가서 환기하고 청소기를 한 번 돌린 다음에 다시 나왔다.
익숙하게 어질러진 집에 물건이 그렇게 많은데 그것 없이도 둘이 밖에서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더진 샤브앤 샐러드바'에서 많이 키우던 다육식물을 보고는 딸이 다육이도 사서 키우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우리가 함께 지낼 미래에 관한 설계에 마당 있는 집, 식물이 많은 집을 그리는 거다.
어릴 때 내가 태어나서 살던 집도 그랬다. 마당이 넓고 식물이 많았고, 마당엔 항상 개와 고양이가 있었다. 삶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집을 마련해주고 싶다. 그런 환경의 삶이 어떤지 느끼게 해주고 싶다.
우연히 함께 간 음식점에서 딸이 한마디 한 것이 나에겐 뭔가 해주고 싶은 열망으로 구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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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원하는 다음 목적지는 거제 천화원. 우리가 다시 만나서 밥 먹으러 가야할 곳은 간장 베이스로 삼선짬뽕을 내주는 그곳에서 탕수육과 짬뽕을 먹기로 했다.
어릴 때 200살까지 살고 싶다고 말하던 딸에게 왜 그렇게 오래 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그 정도로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이 딸에겐 큰 즐거움인 모양이다.
나는 그런 것을 포함하여 딸과 함께 여행하고 뭔가 함께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만족한다. 딸이 아니어도 누군가와 함께 나누어야 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