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동네 빵집에 들러서 내가 좋아하는 소금 빵을 몇 개 담고, 딸내미 좋아하는 빵을 사서 고속도로를 탔다. 전날 밤늦게 동네 마트에서 산 과일을 씻어서 준비하고, 냉동팩에 얼린 음료까지 준비해서 작은 보냉 통에 담았다.
기숙사에 들러서 딸을 태운 뒤에 김해 아웃렛에서 물건 몇 가지 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어지러웠다. 늘 쇼핑몰에 도착하면 밥부터 사 먹었는데 비싸고 뻔한 음식을 먹는 게 싫어서 통영에서 가져간 빵을 차 안에서 조금 먹고 끼니를 두 끼나 건너뛰려고 했더니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어지럽고 힘들어서 뭔가 먹기는 해야겠다.
쇼핑몰에서 30분 남짓 떨어진 밀면집에 가서 밀면 한 그릇씩 먹었다.
"이 동네 맛집이라는 곳에 와서 먹어보니 우리 동네 그 집 밀면이 얼마나 맛있는지 확실히 알겠어."
화로에 고기를 구워서 곁들여주는 것이 특징인 김해 밀면집보다 우리 동네 단골 밀면집 음식 맛이 훨씬 좋았다는 것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끼 먹고 살짝 기운이 도니까 집에 다시 돌아가서 혼자 있을 생각 하니 차라리 조금 더 피곤하게 같이 노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해운대에 있는 쇼핑몰에 갔더니 이미 한 철 앞선 가을 옷이 나왔다. 꽤 저렴한 가격에 덧입을 옷을 한 가지씩 고르고 과일 두어 가지 사서 돌아왔다.
해운대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김해에서 부산 외곽 고속도로를 탔는데 긴 터널 구간이 몇 곳 있었다. 교통사고로 정체된 구간을 지난 뒤에 갑자기 속도를 내며 끊임없이 졸렬한 앞지르기를 반복하는 차를 피하려다가 자칫 잘못했으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꼬맹이 경차는 그만 그 사이에서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핸들 꼭 잡고 있었기 망정이지.......
어떤 일의 경과를 기다리는 100일이 이제 40일 남짓 남았다. 이후에 원하는 과정에 들어서서 안정되면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더 크고 단단한 차를 사야겠다. 어제 고속도로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깜빡이만 켜도 자동으로 자리를 확보해준다는 그 차를 사고 싶다.
이동이 편해진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조금만 부주의하게 운전했다면 그 속도로 달리는 다른 차와 다중으로 부딪혀서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고, 그 일로 내 인생이 어찌 변하게 됐을지 모른다는 경고로 어제 일을 정리한다.
방어운전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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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니 이마 부근에 꽤 흰머리카락이 희끗희끗 보인다. 이런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대로 몇 가닥 뻣뻣하게 뻗쳐 나오는 흰머리카락을 그냥 두기엔 아직은 젊은 나이다. 헤나 가루를 섞다 보니 집에서 라텍스 장갑도 좀 챙겨 왔어야 했고, 커피 드리퍼 뚜껑도 챙겨 왔으면 좋았을 텐데 오랜만에 집에서 자고 긴장이 풀려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익숙한 집에서 자고 일어나서 익숙한 광경을 보는 게 나에겐 편안한 일이라는 것도 어제야 새삼 느꼈다. 이제 집에 가고 싶다. 결국 겨우내 혼자 살아야 할 곳이지만 돌아갈 집이 있다. 딸이 지금 내가 사는 곳과 구분해서 '본가'라고 부르는 그 집이 이젠 내 집인 모양이다.
올해 지나고 3년만 더 채우면 우리가 그 집에서 20년을 산 셈이다. 월세를 내면서 한 집에서 20년 남짓 살아야 했던 우리 형편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때는 알았어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밖에 나와서 살면서 내 지난 시간을 객관화해서 생각하니 그 시절을 어쩔 수 없이 견뎌온 것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그만큼 잘 견뎌내지 못할까 봐 그렇게 자신을 세뇌하고 견디라고만 한 거다.
조금 떨어져서 다른 자리에서 보면 그 자리에 있어서 미처 보지 못한 면이 이렇듯 선명하게 드러나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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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고 풀릴까.....
그렇다면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말해야 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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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짜 마음이 아닌 허튼 생각으로 내 인생의 일부를 채우는 것, 이런 것은 실수다. 카르마를 재생산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자신과 약속했는데 가끔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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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내게 주어진 사흘을 잘 활용해서 일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그와는 다른 선택을 하기로 했다. 기록은 사정상 유예하고 핑계 같아도 일에 묻혀서 인생을 그 틀에 묶어놓을 수 없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 예전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도 남을 일에 쓸데없이 반항적인 생각부터 불쑥 올라온다.
사춘기보다 무서운 오춘기, 아니 갱년기에 이런 정신적인 일탈과 반항이 깃발처럼 앞서서 펄럭이니 자연스럽지 못한 자신의 변화에 타인은 몰라도 나는 아니까 당황스럽고 한편으론 곤혹스럽다. 이런 나를 어느 선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어느 선에서 단호하게 자르고 자신을 괴롭혀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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