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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차 안에서 나눈 대화

by 자 작 나 무 2022. 7. 24.

1.

차 안에서 둘만 있으니 대화하기 좋다. 집중해서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상태는 못 되지만 잡담 나누기엔 나쁘지 않다. 어제 부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딸이 '깻잎 논쟁'을 아느냐고 물었다.

혹시 모를까 봐 그런 질문부터 한 모양이다. 잘 모르는 말을 다짜고짜 할 수는 없으니까.

 

나 : "그럼 알지~ 옆에 연인이 있는데 앞에 앉은 여자 친구의 친구랑 밥 먹으면서 두 장 붙은 깻잎을 젓가락으로 꼭 그 남자 친구가 떼어줄 필요가 있을까? 동성친구끼리도 잘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왜 연인의 친구 깻잎까지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떼주느냐고......"

 

딸 : "그렇지? 엄마, 근데 그게 왜 그런지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근데 내 생각도 엄마랑 같아. 난 그런 경우에 굳이 앞에 있는 여자 친구의 여자 친구 깻잎까지 떼주는 건 아니라고 봐."

 

누구나(여성)에게 친절한 남자는 남자 친구로는 별로라는 데에 동의했다. 뭔가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딸이거나 딸의 친구이거나 그들의 연애사에 비슷한 논쟁을 촉발하는 사건이 있었던지 그 이야기를 하며 열을 낸다. 

 

별것 아니라고 말하고 반응을 살펴볼 것을 그랬나 싶기도 하다. 딸의 반론을 들었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깻잎 논쟁을 아느냐고 물어서 나도 안다는 반응을 보이느라 말이 앞섰다.

 

깻잎부터 시작해서 요즘 20대의 연애사에 이슈가 되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꺼내서 열변을 토한다. 나도 적당하게 맞장구 칠 수 있는 이야기다.  

 

2.

온라인에 떠도는 이모티콘 퍼다가 말없이 이모티콘만 날리는 남자는 나를 어장 관리하는 것 같아서 딱 질색이라고 나도 괜히 눈을 흘기며 한마디 했다. 딸도 거기에 동의한다. 말 한마디가 아니라 남의 사진, 남의 그림 퍼서 안부 대신 휙 던지는 것은 서로 잘 아는 사이여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선 더더욱 내 취향은 아니다.

 

뭔가 말을 하거나 인사는 남겨야 할 것 같은데 마땅히 할 말이 없고 멋쩍어서 나도 이모티콘만 먼저 보내본 적도 있다. 서로 좀 아는 사이거나 친분이 있을 때는 간단하게 그런 것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잘 모르는 누군가와 아무 말없이 이모티콘 하나씩 던져놓는 것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이러하니 남에게 그런 식의 인사밖에 못할 정도로 아무 감정도 이슈도 없을 때는 연락하지 않는 게 옳다고 여긴다. 이래서 내 주변엔 일명 심심풀이 땅콩 같은 인연은 아예 없다. 다들 바쁘게 사는 세상에 상대를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그럴 바엔 차라리 모르는 척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 일절 연락하지 않는다.

 

연락하고 싶어도 상대의 심중을 알지 못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건넨들...... 그래서 어떤 인연은 생각 속에만 존재한다. 생각하고 걱정하고 마음 쓰여도 다 내 생각 속에서만.

 

밀당, 어장관리, 간 보는 것

이런 종류의 유치한 감정 줄다리기엔 관심도 흥미도 없다 보니 연애 비슷한 것도 시작 못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끝내 내 성향과는 다르니 그런 짓을 즐기는 사람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야겠지.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다. 혹은 아무 감정 없거나.

 

 

 

3.

두 번째 찾아간 해운대 쇼핑몰에서 딸이 여기저기 시음회 하는 것에 관심을 보인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한 와인 시음하는 곳에서 먼저 한 잔 받아서 홀랑 마신다. 그리곤 눈을 반짝인다. 지난번에 이 매장에 왔을 때는 전혀 눈여겨보지 않던 와인 매장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기 있는 것을 다 맛보고 싶다고 말했다.

 

시음한 와인 한 병을 샀다. 술 종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와인도 별로 관심 없는데 이건 제 입에 맛있다는 거다. 여행 가서 밤에 마시거나, 원룸에 놀러 가면 감바스 만들어서 새우랑 먹자고 혼자 신나서 떠든다.

 

다음에 다시 프랑스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그땐 꼭 와인 가도에 있던 와이너리 곳곳에 들러서 시음하고 한 병씩 사서 맛보는 호사도 누려봐야겠다. 그때 그 멋진 동네에서 밥만 먹고 왔다. 와인 한 모금 마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딸이 사춘기를 맞은 청소년이어서 독일에서 100년이 넘은 호프집도 그냥 지나쳤다.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는 먼 나라 여행에서 그곳을 그냥 지나친 것이 상당히 억울했지만 말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꼭 다음 유럽여행이 있어야 한다. 딸내미 눈치 보느라고 하지 못한 것을 다음엔 맘껏 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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