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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7월 22일

by 자 작 나 무 2022. 7. 24.

금요일 퇴근한 뒤에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곤혹스럽다. 일주일간 쌓인 피로감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밀려들고 급기야 감정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아무래도 혼자 무얼 해도 좋을 것 같지 않아서 원룸에 돌아가서 가만히 누워있으니 차분해지는 게 아니라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엊그제 꿈에서 깬 뒤에 그 꿈과 연결된 현실이 목구멍에서 도무지 삼켜지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운흥사와 연결된 복지 사업을 시작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따지고 들면 운흥사에 다녀오는 길에 부모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구제하는 일을 도모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20대 중후반은 나에겐 최고조의 행복과 고통이 겉으로 드러나서 두 가지의 극단을 오간 시기였다.

 

내가 뜻을 두고 있는 부분과 맞닿아 있었지만 종교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싶진 않았다.

 

문득 그 생각이 나기도 했고, 여름에 연꽃 피는 시기에 운흥사 가는 길에 연밭에서 예쁜 연꽃을 본 기억이 아름아름 나서 해 지기 전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30대에도 40대에도 두어 번 다녀왔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풍경이 예전의 좋았던 모든 기억을 덮었다. 이제 그런 곳이 아니다. 그 정겹던 돌계단을 일부러 살려놓은 옛정취가 살아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동그랗게 담장을 낮게 쌓은 장독대도 없어졌다.

 

혼자 걷던 길이 때론 지치고 지겹기도 했던 통영 바닷가 산책길이라도 걸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운흥사 주차장에서 목적지를 달아공원으로 바꿨다. 그리곤 그 길로 통영으로 달렸다. 어둡고 구불구불한 국도는 밤 운전 하기엔 최악의 조건이다. 자동차 전용도로까지 넘어가는 그 길고 지루하고 위험한 길을 낮에 달릴 때는 한적해서 좋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통영까지 한 시간 남짓 달리는 동안 살짝 지쳐서 더이상 바닷가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마침 가방에 집 열쇠가 있어서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지난번에 딸내미와 같이 집에 갔다가 인터넷이 되지 않는 집에 있는 게 불편해서 다시 각자의 쉼터로 돌아갔다.

 

운전하는 동안 휴대전화를 자동차와 연결해서 길 안내를 받는 시스템을 쓰다 보니 데이터가 부족한 게 문제가 되었다. 최근에 요금제를 바꿔서 밤에 심심하지 않게 조금 쓸 만큼의 데이터가 남아서 집에서 하룻밤 자기로 했다.

 

다음에 갈 때 가져간다고 사 놓은 작은 건전지를 챙기지 않고 들어간 바람에 에어컨을 서서 꾹 눌러서 켜놓고는 다시 마트에 나가기 싫어서 고민했다. 그냥 삼천포로 다시 돌아갈까? 자리에 누우니 그제야 모든 게 귀찮아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옆방에 있는 벽걸이 에어컨 리모컨이 그 방에 있으렷다. 그 리모컨에 든 건전지를 빼서 다른 방 에어컨 리모컨을 쓸 수 있게 됐다.

 

삼천포에서 아침에 진주로 다시 나가는 길도 너무 지루할 것 같고 그 집에서 깊은 잠을 못 자서 내내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내게는 변화가 꼭 필요한 때였다. 극심한 우울감에 그대로 숨이 넘어갈 것 같아도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고작해야 딸에게 카톡으로 그런 말을 써서 보내긴 했지만 겪지 않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우울감이다. 어쨌든 그 말을 전한 까닭에 바쁜 딸이 토요일에 시간을 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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