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9일 아침
암막 커튼을 조금 열어보니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정신이 혼미하다. 이런 풍경을 늘 보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면 도망치고 싶을 것 같다. 삐죽삐죽 높낮이가 다른 건물이 우후 죽순 자란 듯이 시야에 건물만 빽빽하다.
엊그제 울산에서 강 건너 높은 빌딩을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다. 그 속에 파묻힌 것처럼 높은 건물 속에 있는 게 어쩐지 거북하다.
어젯밤에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아무리 열어보려 해도 열리지 않던 창문 앞에서 몇 번 애쓰다가 창을 열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곧장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띵했다.
열지 않는 것과 열 수 없는 것은 다르다. 안에 갇힌 기분에 머릿속이 터져나갈 것 같은 답답함과 공포감이 뒤죽박죽으로 나를 짓눌렀다.
광안대교를 타고 이 동네로 건너오면서 높은 다리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운전대를 잡고도 느껴져서 어깨가 굳고 온몸이 그대로 폭발할 것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공포감이다. 단순한 고가도로가 아니라 시선을 압도하는 높은 교각이 보이는 고가 도로에서 반복적으로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광안대교에서 아래쪽을 달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공포감이 엄습했다. 이대로 정해진 노선을 이탈해서 바다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다리에 힘이 빠졌다. 어두워서 더 그랬던 모양이다.
그 상태로 체크인한 호텔방은 높고 창문이 열리지 않아서 덤으로 더한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렸다. 당장 도망치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감에 불안했다. 과히 바깥공기가 좋지 않을 것 같지만, 이상한 소독약 냄새가 나는 객실이 어쩐지 싫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배고프지 않은 데도 야식을 주문했다.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그 상황을 잊어야 했다. 바깥은 어지럽고 복잡한 유흥가 같아서 나서고 싶지 않았고, 종일 돌아다녀서 몹시 피곤했다. 그런데도 잠들지 못해서 곤혹스러웠던 밤. 답답함을 털기 위해 기록한다.
*
아침에 눈을 떠도 여전히 그 불안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딸은 나와 같은 환경에 있어도 그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내가 답답함을 호소해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불편함을 견디고 맞서며 밤을 보냈다. 혼자였으면 어떻게든 그 장소를 벗어났을 텐데 딸과 함께여서 그냥 참아야 했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자신을 억누르는 힘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 장소에서 벗어났더라면 그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더 적극적으로 상황을 바꾸도록 주장할 힘이 없을 만큼 그날 그 시간은 힘 없고,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 그래서 더욱 갇힌 느낌이 나를 비트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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