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그리 길게 속앓이를 하고 자책에 자책을 더하며 자학하지도 않았을 테고, 쓸데없는 상상과 욕망의 쓰레기를 재생산하는 짓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
누굴 탓할 수 없는 상황이어도 탓할 상대 없이 자신을 더 비참하게 짓이기지 않아도 되었다.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피하지 못하고 이상한 상황에 빠지게 한 것에 일조한 당사자에게 오늘 쌓이고 밀렸던 감정을 쏟아냈다. 어떤 상황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한 번은 쏟아내버려야 할 묵은 감정이 있었다.
그 고통의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작년 여름 지나면서 정리했으니 이젠 그런 시시한 감정 놀음 따위에 놀아나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한동안 아픈 상태로 고립된 다음에 감정의 파도를 탔다. 시차 적응을 못한 뇌처럼 그때 이미 처리한 감정이 뒤끝 작렬로 나를 괴롭혔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그 감정 그대로 질렀다.
무슨 감정이 늘 그렇게 공손하고 예의 바르겠는가.
쏟아놓고 나니 짐승 같은 것이 하나 쓰윽 사라진다. 욕망의 쓰레기를 소각하는 상상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도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 이런 무책임하고 개념 없는 말도 상상했다.
그 혼란스러운 감정의 파도를 한 번 넘고 나는 반드시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변하지 않는 부분이 필요하지만 변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하니까.
100중에 한 명이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아니 500 중에 한 명이라도, 아니 1000명 중에 한 명이라도 그 희박한 인연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노력 없이 포기했다고 말하기엔 내 청춘이 조금 억울하다.
올해 첫 인연을 만나면 최대한 열심히 노력할 계획이었다. 아니, 예정에 없었지만 나타나 줘서 감사했다. 그런데 그는 2년 전에 이유를 말해주지 않고 갑자기 연락을 뚝 끊어버려서 내 머리를 팽 돌게 했던 그와 똑같은 짓을 내게 했다. 바쁘다던가, 마음이 변했다던가, 그냥 다음은 없다던가, 이전에 내게 보였던 태도와 말과 다른 그런 말이라도 한 마디 해줬더라면 내 감정을 정리하기가 한결 편했을 텐데. 나를 최대한 불편하게 하고 괴롭게 만들어야 할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다시 한번 내 감정은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
올해는 그 감정의 찌꺼기를 완전히 정리하는데 여섯 달 걸렸다. 100일은 견디고 그 이후의 시간은 내 나이엔 겪기 힘든 감정을 차분하게 정리하는데 그 정도 애도의 시간은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감정이 나서는 상대만 만나면 이런 꼴을 당하는 게 예정된 일인가 싶을 만큼 어이없음에 어이없음의 반복이 딱 두 번이었는데 운명론처럼 생각될 만큼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어제 막힌 기혈을 뚫으러 어딘가에 가서 온몸에 독소를 열로 빼내는 시간을 경험했다. 결국 몸에 쌓인 독은 그냥은 빠져나가 주지 않는다. 감정으로 쌓인 독소가 나를 공격하게 두는 지점까지 이르는 동안 나는 끝내 부정하고 또 부정하며 괜찮다고 생각했다. 몸은 괜찮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늘 내 속에서 반만 터진 폭탄 하나를 밖에 던졌다. 희한하게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기억나지 않던 이름이 불쑥 떠올랐다. 어딘가에 기억이란 것이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는데 내가 억누르고 지우고 싶어 했나 보다.
어떤 기억은 너무 선명해서 매일매일 새로울 정도로 고스란히 떠오른다. 도무지 저항할 수 없는 기억도 있다. 그 외의 기억은 때때로 희미해지고, 아무리 꺼내려해도 나오지 않거나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이 감정은 오늘 기록해서 언젠가 뒤져보면 그땐 그랬다고 웃게 되겠지.
감정의 영역은 진화하지 않는 것인지...... 내가 좀 덜 떨어진 인간인지.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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