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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8월 24일

by 자 작 나 무 2022. 8. 24.

스무 살 되던 해 봄에 나는 그만 살기로 결심했다. 나란 존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냥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누군가 멋대로 설계한 인생에 맞춰서 그럴듯한 역할을 하는 아바타 같은 삶이 싫었다. 이 삶이 그런 것이라면 반드시 거부해야 할 것으로 확신했다. 내 계획은 실패했고, 이후에 원하지 않는 삶을 이어가는 내게 삶은 불필요한 부록 같이 느껴졌다. 내 삶의 본질을 통찰하고 그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살기 이전엔 그랬다.

 

어느 때는 남이 사는 모양새를 관찰하고 그들과 비슷하게 살아내면 큰 문제없이 살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수긍할만한 부분은 따라서 해보는 거다. 사회생활을 뒤늦게 시작하면서 대체로 큰 문제없이 대학 졸업한 뒤에 취직해서 직장 생활을 규칙적으로 해 온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내 생각이 부딪히는 느낌이 들 때가 간혹 있었다.

 

눈에 띄게 이상할 정도의 뭔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이 다른 부분에서 가끔 티나게 부딪힐 때는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심리적 제재를 가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후에 그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입을 다물어야 했고 행동도 남이 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않게 조심하다 보니 이제 그 틀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이해했다.

 

삶이 다르면 생각이 달라진다.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지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어떤 다른 사람이 되거나 정해진 틀이란 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전에 자신이 인지하던 사람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다.

 

어차피 인간은 변화한다. 외모나 내면은 변화하고 성장하고 쇠락하는 과정을 겪는 거다. 내 삶은 전반전이 몹시 치열했고, 중반에 들어서서 서서히 적응했다. 후반은 안정적이고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될 거다. 물론 어떤 일도 장담할 수 없지만, 인생이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보니 흐름을 주도하는 자리에 서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전반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지나간 시간을 이해하고, 현재는 괴리감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살아내고, 미래는 이렇게 뻗어가면 적절히 그려질 그림을 그려본다.

 

내가 크게 모나고 불필요한 짓을 하지 않는 한에 이어질 미래의 삶은 이보다 더 나을 것이다. 그려진 대로 흘러간다. 생각한 대로 살아진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범주에 한해서.

 

타인과 엮인 부분의 삶은 자의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내 속에 불협화음을 조절하고 나면 바깥 풍경이 보인다. 몹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인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생각한다. 안타깝다는 감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의 삶의 영역에 나는 아주 좁은 시야로 일부분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입장이니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많은 것이 흘러가는 동안 그 상황에서 덜 힘들고 나름의 평정을 찾기를 바랄 뿐.

 

실낱보다 가는 파장이라도 수없이 모이면 잠시 흐름을 아주 비스듬하게 바꾸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나만의 믿음을 근거로 정제된 감정과 정신 상태로 가야할 바람직한 길로 상황이 전환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기도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향점을 반복하여 끊임없이 바라는 행위. 그것이 순수한 에너지로 변환하여 어떤 힘으로든 작용하기를 바란다.

 

그가 존재하는 공간, 관계가 조금이라도 더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와 연결된 인연의 안녕을 기원한다. 나와 연결된 인연이 안온하고 평안하기를 바란다면 그와 연결된 많은 사람의 안녕도 기원해야 옳다. 그래서 결국 어떤 특정한 누군가의 평안만을 기원할 수가 없다.

 

더 많은 사회 구성원의 삶이 덜 위태롭기를 바란다면 나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그 일념이 정말 내게 중요한 것이고 간절한 것이라면.

 

그런 바람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이 위대해 보인 것은 얄팍한 감정적인 바람을 넘어선 사람이었고, 자아가 한낱 그림자인줄 이미 알고 존재의 근원에서 발원하는 에너지를 극대화하여 거기에 쓰려는 사람이라고 읽었다.

 

내 눈에 비친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도 사실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지향하는 삶의 정점과 무관하지 않다. 드러나게 뭔가 하는 것은 그만한 역량과 도구적 가치를 부리는 자가 할 것이고 그 이면의 것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내가 모를 뿐이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영역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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